(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주인공 ‘나’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 예전에 그 친구와 함께 고철상에서 구입한 스테이션왜건 ‘1988’을 타고 나섰다. 그리고 여행 첫날밤 `나`는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게 된 여자 `나나(娜娜)`와 뜻하지 않은 동행을 시작한다.
중국 ‘바링허우(八零後·1980년대 이후 출생자를 일컫는 중국식 표현)’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소설가이자 파워 블로거인 한한(韓寒·29)의 신작 소설 ‘1988’(생각의나무 펴냄)은 한 편의 로드 무비처럼 주인공이 1988을 타고 한 여자와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을 혼잣말을 하듯 담담하고 잔잔하게 써 내려간다.
소설은 주인공 ‘나’가 임신한 매춘부와 1988 왜건을 만들어준 친구를 찾으러 가는 현재의 여정 속에 과거의 여정들이 함께 엇갈린다. 형 핑핑과 10번, 리우인인 등 어린시절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1988을 따라 앞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은 5일간의 여정 이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나로부터 예기치않은 ‘선물’을 전해 받은 주인공이 친구의 유골을 자동차 ‘1988’에 싣고 다시 길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988 그 친구, 띵띵 형과 10번, 그리고 리우인인과 멍멍, 그리고 그리고 또 다른 내 친구 나나. 그들은 오로지 내가 부딪혀야 하는 높은 벽을 나를 대신해 부딪히고, 내가 빠져야 할 협곡에 대신 떨어졌다. 그런 다음 나에게 알려주었다. ‘이 길은 괜찮으니까 계속 앞으로 가봐. 안녕, 친구!’”(279쪽)
중국 문단 내 대표적인 신예 작가이자 이단아로 주목받는 한한은 29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무라카미 하루키, 차세대 루쉰에 비견되기도 한다. 2010년 미국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힐 정도로 저명인사의 반열에 올랐다.
한한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현실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캐낸다. 거대한 서사에 선 굵은 표현이 주류를 이루는 다른 중국 소설들과 비교할 때 한한의 소설은 잔잔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존 소설과는 다른 세련된 감각과 섬세한 내면 묘사로 젊은 독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김미숙 옮김. 288쪽. 1만2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