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클라라와 폴 잡스 부부에게 입양돼 캘리포니아주(州) 로스 알토스에서 성장했다. 양부모의 손에서 자란 잡스는 어릴 때부터 실리콘밸리 인근의 집 창고에서 전자부품 만지기를 좋아했다.
잡스는 전자 부품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 친해진다.
이들은 공짜로 전화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 판매하는 등 요즘으로 말하면 해커처럼 전자부품을 이용해 장난기 어린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때 수강한 서체에 관한 수업은 이후 맥컴퓨터에 응용된다.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잡스는 이 때 동양철학 수업 등을 듣기도 하면서 참선 등을 수행하기도 했다.
잡스는 1976년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해 애플2 PC를 내놓고 회사를 일으켰으나 1985년 자신이 영입한 팹시콜라 출신 존 스콜리가 주도하는 이사회에서 해임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회사를 떠난 잡스는 루카스 필름이 내놓은 3D 애니메이션 제작부서를 인수해 픽사를 설립하고 재기에 나서 디즈니의 지원에 힘입어 토이스토리로 성공을 거둔다.
픽사의 성공적인 경영은 스티브 잡스가 콘텐츠 사업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맥킨토시의 부진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애플은 다시 잡스의 복귀를 요청한다.
애플에 복귀해 회사 살리기에 나선 스티브 잡스는 2001년 아이팟을 내놓으며 음악 다운로드 시장을 개척한다.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를 꾀하면서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전략이 시작됐다.
아이팟의 성공은 음악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놨다.
2007년에는 아이팟에 휴대전화 기능을 포함시킨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모바일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애플리케이션 구입이 가능한 애플 스토어를 만들면서 70%의 수익을 제공한 전략은 개발자들을 끌어들였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뒤지던 상황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IT 흐름을 주도하면서 모바일 시장의 선도자 역할을 했다.
사용자들은 손 안에서 멀티미디어, 이메일, 게임, 동영상 촬영과 시청, 애플리케이션 구동이 가능한 아이폰과 이를 열정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에 열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잡스를 표지 모델로 신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진단 후 수술을 받고 2009년에는 스위스에서 간이식을 받는 등 투병생활을 했다.
스티브 잡스는 병 악화로 지난달 CEO 자리를 팀 쿡에 물려주고 5일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일부에서는 간 이식이 병을 악화되도록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간을 바꾼다 해도 다른 곳에 남아 있는 암세포가 전이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로렌과 3자녀가 있으며, 로렌과의 결혼에 앞선 전처와의 사이에도 딸이 하나 있다.
잡스의 재산은 80억달러(9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잡스 재산의 90% 이상은 보유 주식으로 픽사를 디즈니에 매각하면서 얻은 디즈니 주식 1억3800만주와 애플 주식 542만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 연설을 통해 “늘 배고프고 바보처럼 지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끝을 맺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설적인 IT업계의 별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