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나부터 살자!" 월가의 헤징

2011-02-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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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송철복 기자) “위에서는 정책을 만들지만 아래에서는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上有政策下有對策)”는 중국 속언(俗諺)을 입증할 만한 사건이 최근 미국 금융가에서 포착됐다.

근년 세계를 뒤흔든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들 중 하나로 미비한 은행제도를 지목한 미국 금융당국은 월스트리트에다 대고 임원 보수 지급 관행을 전면 쇄신하라고 압박했다.

그러자 대형은행들은 임원 보수 중 자사(自社)주식으로 지급하는 부분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한다면 주식을 보수로 받는 임원들이 아무래도 투자자들을 더욱 의식하게 되고 따라서 책임감이 높아져 무리한 위험감수 행위를 삼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이번 보수 제도 손질의 원래 취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은행임원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첨단 금융기법을 활용해 자기들 보유 주식에 헤징(가격 변동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 취하는 거래형태)을 걸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다른 주주들이 손해를 볼 때에도 자기들은 손해를 피하거나 심지어 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최고위 임원 475명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2007년 7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헤징 기법을 구사해 온 것으로 최근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특히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해 골드만삭스 주식값이 매우 불안정해졌을 때 자신들의 보유주식을 보호하기 위해 복잡한 금융기법을 종횡무진 동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헤징 기법을 사용해 수백만 달러를 절약한 임원들도 수두룩했다. 한 유명 임원은 4개월 간 7백만 달러 이상의 투자손실을 “방어”해 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사 임원들에게 주식 헤징을 허용해야 하느냐 여부가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다. 헤징을 허용하면 해당 임원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보호하는 데만 온통 정신이 팔려 회사의 경영성과 따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회사 주식이야 떨어지건 말건 내가 가진 주식값만 유지하거나 올리면 된다”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의 임원들은 해당 금융회사가 구제금융을 다 갚기 전에는 헤징전략을 쓰지 못하도록 아예 금지시켰다.

투자위험 관련 컨설팅업체 리스크메트릭스사(社)의 패트릭 맥건은 “이런 헤징 행위 중 많은 사례에서 임원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맞부딪히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기업의 임금 구조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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