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신묘년의 아이콘 '토끼'는 예로부터 지혜로운 동물의 대명사다. 맹하고 순하기만 할 것 같은 토끼의 외모에 지혜로움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지니 사람들이 토끼 고기를 식용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토끼의 지혜로움은 SF 영화 스타트렉의 요다나 공자 맹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지혜롭다기 보다 '꾀가 뛰어나다'고 표현해야 알맞은 정도다. 지혜는 지식을 담보로 하지만 꾀는 '낌새를 알아채는 본능'과 '민첩한 눈치'에서 우러난다.
토끼가 거북이의 꾐에 넘어가 용궁까지 따라가서, 이런 저런 변명으로 병든 용왕에게 자기 간을 진상하지 않고 용케 살아난 이야기. 짧은 단막극 정도 되는 이 전설은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 어디 옴치고 뛸 수 없는 막바지에서야 아찔하게 튀어나오는 잔꾀와 구라, 핑계와 슬랩스틱 등을 적당한 리듬으로 변주한 것이다. 토끼의 지혜라는 것은 곧 아슬아슬,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신음이나 비명처럼 비어져 나오는 매우 생존지향적인 잔꾀의 종합이다.
2011년 한반도 정세와 국내 정치 이슈, 세계 경제와 정치의 흐름 등을 전망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한결같이 희망적이지 않다. 심지어 2010년이 '마지막 잔치판이었다'고 재수없는 입방정을 떠는 이들도 있다. 맛 없는 제사 음식 먹고 나서 뱉는 한이 있더라도, 굳이 미리 헛구역질 할 것까지야 없지 않나? 차라리 "지난 해 제사 음식은 정말 맛있었는데 올해는 좀 이상하네..." 이렇게 얼버무리는 면상이 보기 낫지 않을까? 핵전쟁 전야라니, 더블딥이라니, 미중 갈등의 최악 국면이라니. 가뜩이나 쫄아든 가슴들인데, 왜 새해벽두부터 어두컴컴 불안감의 무게에 더 짓눌려야 하는가?
심지어 어떤 정신나간 인터넷 소식과 뉴스는 러시아발로 '2012년 연말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UFO 선단이 지구로 돌진해 상상할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것'이라거나 '2013년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등 해괴한 비관론을 날려댄다. 어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지만 미래의 동량이라는 10대, 20대는 동요한다.
예수라면 어찌했을까? 처럼 토끼라면 어땠을까? 만일 토끼가 이런 비관론들을 거북이에게서 얻어 들었다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한 눈에 '이게 내 힘 빼서 꾀어 내자는 수작이구나' 알아채고 귀뺨을 날렸을까? 호기심을 못 참고 기어코 거북이를 따라갔다가 뒤늦게 함정임을 깨닫고 안간힘을 써서 생존의 잔꾀를 부려 살아났을까? 아니면 용왕과 문어와 오징어, 꼴뚜기, 고등어, 학꽁치 등의 시스템적인 공세에 떠 밀려 기어이 수술대에 오르고야 말았을까? 앞날을 알 수 없는 토끼의 팔자다.
토끼의 팔자 처럼 미래도 알 수 없다. '미래 전망'이라는 것도 지나놓고 보면 '다사다난'의 아주 작은 구성요소일 뿐, 신주단지가 아니다.
2011년 국내외 경제와 정세가 어떻게 흐를지, 어떤 변수가 터져 나와 민심을 뒤 흔들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2010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도 그랬다. 전 세계를 감청·녹화한다는 에셜론 프로젝트팀도,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의 흐름과 검색어 동향을 수집했다는 구글도, 난다 긴다하는 선진국의 첩보원들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알지 못해서 불안한가? 내 생각엔 아니다. 되레 알 수 없어서 더 흥미진진하다. 구미가 당기고 호기심이 동한다. 과거를 돌아보고 싶고 명왕성 너머 진입하고 있다는 UFO의 존재에도 궁금증이 동한다. 허무맹랑한 거짓부렁으로 판명날지언정 머릿속이 뒤숭숭한 게 재밌다. 세계 경제와 정치의 시스템이 전부 붕괴한다는 비관론일지언정 긴장감이 생겨서 더 좋다.
비관적인 세상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신 우리 어머니들의 말씀처럼 사람이 게을러지고 물러지고 늘어지는 것처럼 안 좋은 게 없다.
"추우니까 좋지 뭘 그래. 사람 부지런해지고.... 내 목숨은 하나님거야. 걱정 마." "추우니까 밖에 나다니시지 말라, 길 미끄러운데 신발이라도 제대로 신고 나가시라" 오지랖 넓게 말 생색만 내는 47세 아들에게 77세 노모가 툭 내뱉는 말 속에 뒤통수 때리는 깨달음, 생존의 지혜가 느껴졌다. 세상과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건 늘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을 유지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2011년도 예측과 전망에 휘둘리지 말고 생생한 현재를 살아 내자. 우리모두 토끼처럼. 다사다난했지만 다사다행했던 그 전설의 토끼처럼. [트렌드아카데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