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구제역이 경기북부, 강원 지역까지 확산되면서 정부가 마지막 수단인 `예방백신' 접종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지난 2000년 3월 구제역 발생 당시 예방백신을 접종, 구제역 확산을 막았지만 당시는 지난 1934년 이후 처음으로 구제역이 생긴 터라 경험 부족으로 `부랴부랴' 백신을 접종했다.
당시는 구제역 발생이 3개도 6개 시군에 걸쳐 15건에 그쳤고, 살처분은 2천216마리에 불과했다. 살처분 보상금 71억원을 포함한 정부의 전체 국고 지출도 3천6억원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심신고 64건 가운데 13개 지역 44건이 구제역으로 판정됐다. 또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하는 과정에서도 확인된 구제역까지 포함해 전체 구제역은 3개 시.도 16개 지역에서 48건에 달한다. 춘천과 원주의 의심신고도 구제역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이번 구제역으로 지금까지 1천289농가의 소.돼지.사슴.염소 등 22만4천605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매몰돼 살처분 보상금만 2천300억원을 넘어서는 등 피해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지만 예방백신 접종을 결정하기 위해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주재로 이날 오후 4시 농식품부 청사에서 열린 긴급 가축방역협의회에서는 백신접종에 따른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회복의 어려움, 축산농가의 피해 등을 우려한 반대 목소리가 많아 2시간30분여간의 난상토론끝에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선 백신사용하고도 재확산
구제역 피해규모가 사상최대를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처방을 내린 예방백신 접종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실례로 지난 97년 3월 대만에서는 돼지 구제역이 발생해 전체 돼지 1천68만마리 가운데 385만마리가 살처분됐다. 당시 대만은 초기단계에서부터 백신 3천만개를 접종했으나 한달뒤인 4월 오히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급기야 바닥난 백신을 긴급수입해 1천만개를 추가접종한 끝에 구제역을 종식시켰다.
영국과 일본은 결과적으로는 백신을 통해 구제역을 막았지만 피해는 엄청났다. 일본은 올해 미야자키현에서 구제역이 터져 1천86농가의 33만6천306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구제역 발생 및 의심농가가 292곳에 이르고 살처분 대상이 21만1천608마리로 늘어나자 뒤늦게 백신을 접종한 뒤 접종된 가축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영국은 2001년 2월 구제역이 발생하자 초기에는 살처분.매몰 방식으로 대처하다 결국 백신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미 가축 400만여마리가 살처분돼 경제적 손실이 80만파운드를 넘어서는 등 적지 않은 피해가 났다.
◇백신이 최선의 대안인가?
영국이나 일본이 백신을 사용하고도 적잖은 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백신을 투여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처럼 백신을 사용해도 구제역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구제역 바이러스의 혈청형은 7가지나 된다. 게다가 혈청형태가 같더라도 변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백신을 통한 족집게 처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난점이 있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도 지난 21일 경북 안동 구제역의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설명하면서 "경북 구제역 바이러스들의 염기서열이 초기에는 일치했지만 나중 것들은 1개 또는 3개씩 다른 것이 나와 변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따라서 더 조사해봐야 이번 구제역이 같은 바이러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백신을 통해 구제역을 종식시킨다 해도 `오명'을 씻지는 못한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구제역 청정국을 과거 12개월간 구제역 발생.감염은 물론 백신접종이 없었던 `백신 비접종 청정국가'와 `백신접종 청정국가'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백신을 사용하더라도 대만처럼 구제역이 다시 창궐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백신을 접종한 가축에서는 구제역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증상이 가벼워 웬만한 임상으로는 구제역 발생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증상발견에 실패하면 또다시 구제역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대만은 백신을 통한 구제역 종식 이후에도 매년 1회씩 예방접종을 해왔지만 97년 이후에만 4차례나 추가로 구제역이 나왔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구제역 예방백신을 처방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범위를 선택하느냐가 이번 구제역 종식을 위한 1차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범위를 제대로 설정해야 추가 발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단 구제역의 주요 발원지로 의심되는 지역들을 골라 반경 10km이내의 한우에 대해 백신을 접종하는 `링백신'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발원지를 몇 곳으로 설정할지, 백신 접종과 함께 동시에 진행되는 살처분의 규모를 어느 정도로 제한할지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정부가 마지막 수단인 백신접종을 선택했으면서도 선뜻 구체적 방안을 확정짓지 못한 것은 그만큼 축산업계의 반발이 컸던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회의가 2시간30분여간이나 난상토론 형식으로 진행됐고, 정부의 간곡한 설득끝에 백신을 접종하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 장관도 "축산업계 대표들이 협의회에서 여러가지 의견을 표출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도 많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업계 대표들은 이번 백신 접종으로 정부가 청정국 지위가 완전히 포기, 이로 인해 축산농가가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청정국 지위를 조속히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구제역의 전국적 확산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백신 접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