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
국감에서 제기된 설계변경 문제는 옳고 그름을 떠나 언론이나 국민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건설공사는 주문에 의해 생산되는 완성품이어서 계약 당시 금액이 완공 단계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다. 하물며 개인이 집을 지을 때도 최초 계약금액이 완공금액으로 확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성제품과 주문상품 사이에 시간적 차이와 생산과정에서 환경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건설공사가 설계변경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발주자의 주문이 완벽 할 수 없는 문제다. 발주자는 요구 사항을 가정을 전제로 해 공사를 계약한다. 당연히 건설 과정에서 발주자의 주문은 변경 될 수 있다. 둘째 설계와 공사 현장 간의 불일치 문제다. 설계는 변수가 많은 현장 조건이나 재료 속성 등을 고려해 설계하기 때문에 완벽한 설계는 공사가 완공돼야 끝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국내외 건설현장에서 가장 빈도가 높은 게 바로 설계변경이다. 셋째 공사의 편의성이나 성능 개선을 위해 설계변경이 필요한 경우다. 국내 공사계약 방식은 발주자 혹은 계약자 요청에 의해 설계변경이 허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설계변경이 상대적으로 자주 일어날 수 있다. 넷째 국내 공공예산 편성 제도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설계변경이다. 공공사업에서 필요한 예산이 적기에 배정되는 경우는 2% 이하로 알려져 있다. 최근 관련 단체 조사에 의하면 당해년도 예산 배정이 제대로 편성되는 경우는 53%에 불과하다. 당연히 공기지연으로 인해 금액변동이 생기고 이를 계약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변경이다.
영국 등 선진국의 건설공사 실태는 어떤가. 영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건설공사의 73%가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사업비가 증가되고 공기는 70% 이상이 지연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도 작게는 0.6%에서 16%까지 계약액 대비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건설공사에서 설계변경은 불가피하게 발생 할 수밖에 없는 산업적 특성인 것이다. 물론 설계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적으로 구속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계약분쟁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이 방법은 극히 제한된 공사에 한정해 적용하고 있다.
때문에 건설공사에서 설계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금전적 피해까지 정당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설계변경이 가능한 최소화돼야 할 대상임은 틀림이 없다. 설계변경의 원인이 되는 발주자의 요건을 명확히 하고 설계의 완성도도 높여야 한다. 목적물이 들어서는 위치에 대한 지질 및 지하매설물 조사 등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필요한 입력정보와 발주자 요건이 명확하고 정확할수록 공사 중 설계변경 요인은 감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한 정보입력이나 발주자 요건도 물과 땅을 대상으로 한 건설공사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완벽한 설계에 의해 공장에서 제작되는 일반 상품과는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다만 설계변경이 계약액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소지는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대부분의 공공발주기관들이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설계심의위원회를 두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인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진단해야 처방책을 내릴 수 있다. 다음 국정감사에서는 나타난 결과에 대한 추궁보다 원인 제공 문제가 더 부각되길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