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아일랜드가 '그리스 비극'을 재연할 조짐을 보이자 국제 금융시장이 또 다시 유럽발 재정위기 공포감에 휩싸였다.
◇'밑빠진 독' 은행권 지원 '눈덩이'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 아일랜드 중앙은행(ICB)이 30일 앵글로아이리시뱅크에 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투입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전망대로라면 이 은행에 들어간 구제금융은 모두 300억 유로로 불어나게 된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앵글로아이리시뱅크에 대한 지원액이 늘어나면 금융위기 이후 아일랜드가 금융권에 쏟아부은 자금이 1000억 유로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일랜드 정부는 은행권이 떠안고 있는 4000억 유로 규모의 채권도 보증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5배에 상당하는 액수다.
S&P는 앵글로아이리시뱅크에 대한 자금 지원 규모가 불어나 아일랜드 정부의 부채가 오는 2012년까지 GDP의 113%를 웃돌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6개국) 평균치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신용등급이 비슷한 벨기에나 스페인보다 높은 수준이다.
◇국채 금리ㆍCDS 스프레드 급등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아일랜드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전날 10년 만기 아일랜드 국채 금리는 25베이시스포인트(bpㆍ1bp는 0.01%포인트) 뛴 6.72%를 기록했다. FT는 이 수치가 지난 4월 그리스 국채 금리와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유럽발 재정위기 공포를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그리스는 이후 1개월만에 국제사회에 손을 벌리며 우려를 확산시켰다.
같은날 국가부도 리스크를 반영하는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스프레드도 사상 최고치인 500bp에 육박했다. 이로써 1000만 유로 상당의 아일랜드 국채에 대한 보험비용은 연간 50만 유로에 달하게 됐다.
앵글로아이리시뱅크의 CDS 스프레드도 960.5bp로 전날보다 24.5bp 올랐다. 이는 5년 내 이 은행이 채무불이행(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57%에 달한다는 의미다.
영국 투자중개업체 아이캡(Icap)의 돈 스미스 이코노미스트는 "아일랜드가 격랑의 한 가운데 서게 됐다"며 "그간의 과도한 성장으로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못한 성장률에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경제는 지난 2분기 0.4%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깨고 1.2% 위축됐다.
FT도 아일랜드가 공공부채를 줄이기 위한 긴축에 집중하면서 경제 성장세를 희생시켰다고 지적했다. 아일랜드는 그리스와 달리 지난해 12월부터 부채 축소를 위한 강도 높은 긴축에 나섰다.
◇그래도 그리스보다는 낫다?
시장에서는 아일랜드가 처한 상황이 그나마 그리스보다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단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에 개입해 아일랜드 국채를 매입하고 있다는 게 긍정적이다. FT는 ECB의 개입으로 아일랜드 국채 금리 상승세를 제한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5월 10년 만기 그리스 국채 금리가 12%까지 치솟으면서 그리스는 채권시장에서 추방당했다.
아일랜드는 또 향후 6개월간 조달해야 하는 자금을 이미 확보한 상태로 당분간은 채권시장에 나설 필요가 없다. FT는 그러나 앵글로아이리시뱅크에 대한 구제금융 규모가 350억 유로를 넘게 되면 아일랜드도 결국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손을 벌려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전날 아일랜드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경고했고 무디스는 앵글로아이리시뱅크의 신용등급을 투자 적격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Baa3'로 3단계 낮췄다.
앞서 S&P는 지난달 아일랜드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춰 잡고 투자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S&P는 당시 향후 1~2년 사이 신용등급의 추가 강등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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