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 잠정발효 늦춰진 한-EU FTA

2010-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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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캐서린 애슈턴 당시 유럽연합(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서명하던 작년 10월15일.

   김 본부장이 "내년(2010년) 1분기에 정식서명을 해 하반기에 잠정발효시킨다는 목표로 후속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던 그날 이탈리아에서는 "협정 승인권을 쥔 이사회에서 우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뉴스는 27개국이 합의해 가서명까지 이뤄진 마당에 이탈리아가 '몽니'를 부리는 것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결국 가서명 이후 EU 이사회의 승인까지 1년 남짓 한-EU FTA 후속 절차 진행이 게걸음 행보를 보이는 서막이었던 셈이다.

   EU는 가서명 이후 협정문 번역에 들어갔다. 27개 회원국을 가진 EU는 지구 상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대표적인 다언어 공동체로 23개 공식어가 인정된다. 가서명된 영어본 이외에 나머지 22개 언어 중 아일랜드 고유어인 겔릭어를 제외한 21개 언어로 협정문을 번역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연말연시 휴가 등이 겹치면서 협정문 번역은 지지부진했다. 작년 10월 가서명된 협정을 올해 1분기에 정식서명한다는 목표 자체가 실현 불가능하게 됐다.

   양 측은 잠정발효 시기에 대해 "연내에 이뤄지도록 한다"고 한 걸음씩 물러나기 시작하면서도 가급적 조속히 후속절차를 진행하고자 EU 측에서는 유럽의회와의 협상에 착수하는 등 '병행전략'을 썼다.

   여름 휴가철 탓에 2개월 가까이 '잠복기'에 들어갔던 한-EU FTA 승인 문제는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지난 10일 EU가 특별이사회(통상장관회의)를 열어 협정 승인을 상정하겠다고 결정,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특별이사회에서 순조롭게 협정 정식서명을 승인하면 후속절차에 박차를 가할 경우 연내 발효를 밀어붙일 여지가 있어 보였다.

   이 때문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특별이사회에 앞서 EU 측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외교적 노력을 펼치는 한편, 이사회 직후 정식서명이 이뤄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브뤼셀로 날아왔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반발에 자국 내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탈리아 정부가 "정식서명까지는 합의하겠다. 다만, 올해 12월1일은 물론이고 내년 1월1일 잠정발효 개시도 받아들일 수 없다. 1년 정도 잠정발효 시기를 늦추자"며 버텼다.

   11개월 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경고가 빈말이 아니었음이 확인되는 상황이었다.

   나머지 26개국이 "한-EU FTA의 조속한 발효"를 주장하며 압박했으나 이탈리아는 요지부동이었고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벨기에가 "발효를 늦추는 걸 받아들이되 1년을 늦추는 것은 곤란하다"는 중재안을 내놓았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계속된 다른 회원국들의 설득과 압력에 이탈리아 정부도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고 판단, 벨기에가 내놓은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정식서명은 조속히 이뤄지도록 하되 잠정발효를 내년 7월1일로 늦춘다는 데 27개국이 뜻을 모았다.

   이탈리아 정부의 반대 철회 입장은 한국 측에도 전달됐고 양측이 잠정발효 시기를 연기하는 데 합의함에 따라 16일 열린 정상회의와 특별이사회(외무장관회의)에서 한-EU FTA가 정식 승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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