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고교용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안을 17일 최종 발표함에 따라 6개월여 간 지루하게 계속된 교과서 논쟁이 가라앉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교과부가 내놓은 이번 수정안은 사실상 교과부의 `직권수정' 성격을 담고 있는데다 수정 내용이 `첨삭지도' 수준에 불과한 것들도 많아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교과서 수정이 저자들과의 동의없이 이뤄졌다는 데 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국정이 아닌 검정 교과서이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에 대한 수정 권한은 기본적으로 저자들에게 있고, 수정을 하려면 저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저자들은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이미 김영삼 정부 때 검정을 통과한 것이고 교과부도 그동안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가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낙인찍었다며 반발해 왔다.
교과부의 수정권고나 지시에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저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교과부는 결국 출판사들로부터 의견을 구해 수정안을 만들었으며 저자들은 이에 대해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며 15일 법원에 저작권 침해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수정안 내용의 상당수가 `첨삭지도'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실제 교과부의 수정안을 보면 신미양요, 병인양요 관련 부분에서 프랑스, 미국 함대의 `진로'라는 표현을 `침입로'로 수정하고 `탈북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1980년대 민족민주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고치는 등 이념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용어 표현상의 문제로 인한 것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또 "이승만은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중단되자 곧바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금성 261쪽)에서 `곧바로'란 표현을 삭제하고 "결국 북한은 남한 정부가 남북 대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구실로 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말았다"(금성 309쪽)에서 `결국'을 `이후'로 바꾸는 등 일부 단어를 삭제하거나 대체한 것들도 많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이 정도 수준의 수정을 위한 것이었다면 해당 교과서들을 굳이 `좌편향'으로 몰아세우고 우리 사회에 심각한 좌우 대립을 초래할 정도로 논란을 일으킬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교과부 심은석 학교정책국장은 "저자들이 보기엔 첨삭지도 수준일지 몰라도 제3자 입장에서는 단어 하나가 바뀜으로 인해 전체 문맥이나 인과 관계가 달라지는 결과로 여겨질 수 있다"며 "따라서 단어 하나, 일부 문구의 수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수정된 내용을 반영해 내년 1월부터 교과서 인쇄에 들어가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내년 2월 중순께까지 각 고등학교에 새 교과서 배포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심 국장은 "가처분 신청 결과와 관련한 여러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해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으나 내년 신학기까지 수정된 교과서를 보급하는 일정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