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 국회 처리문제로 여야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로 다른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국가기록물 유출, 쌀 직불금 감사결과 은폐 의혹에 이어 한미FTA 문제가 다시 전․현전 정권 갈등의 골을 심화시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한미FTA와 관련, “미국과 FTA를 체결한 세계 모든 나라가 먼저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그 후에 미국이 비준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우리가 먼저 비준하는 게 마치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처럼 말하는데 이런 주장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한·미간 오랜 협상과정을 거쳐 FTA 체결이 이루어 진 만큼 전략적 차원으로 서두를 것이 아닌 국가 대(對) 국가의 상도 차원에서 조속히 비준하는 게 당연하다는 취지의 언급이라고 청와대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설한 토론 웹진 ‘민주주의 2.0’에 올린 글에서 ‘외교전략’' 접근을 강조하며 이 대통령과는 상이한 주장을 내세웠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FTA 비준, 과연 서둘러야 할 일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가 비준을 한다고 해서 미국 의회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FTA를 살려 갈 생각이 있다면 먼저 비준을 할 것이 아니라 재협상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재협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우리가 먼저 비준해 놓고 재협상을 한다는 것은 두번일일 뿐 아니라 국회와 나라의 체면을 깎는 일이 될 것”이라며 “결코 현명한 전략이라 할 수 없다”고 선 비준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에 청와대와 여당은 현 정부가 애써 재협상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FTA 협상을 타결 지은 사실상의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이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은 부적절하다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 참모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FTA에 대한 입장차를 떠나 전직 대통령이 정치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개입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그간 그분께서 당신의 손으로 추진한 한미 FTA를 이제 와서 반대하면 어떡하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비준 안하고 기다리는 것이 유연해 보일 수는 있으나, 국격(國格)은 말이 아니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많았다”고 밝힌 후 “정치적 이유로 한미FTA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고,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양심선언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나 그 어느 것도 아니며 상황이 변한 만큼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실용주의이고 국익외교”라고 밝혔다. 김한나 기자 hanna@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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