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상태에 빠진 한국과 유럽연합(EU)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진전을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수석대표와 장관급 연쇄 절충이 시도된다.
6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와 EU 측의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수석대표가 이날 서울에서 대좌하는데 이어 오는 12∼13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캐서린 애쉬튼 신임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담판을 벌인다.
특히 이번 장관급 협상은 EU의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교체된 뒤 처음 이뤄지는 것인데다 버락 오바마 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국제통상에서 보호주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만큼 타결시점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EU 양측이 자동차 등 핵심 쟁점에서 뚜렷한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협상도 쉽지 않은 고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한.EU도 자동차가 '걸림돌'
정부는 그간 한.EU FTA의 진전 상황에 대해 "핵심 쟁점만 남은 상태"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반복해왔다.
웬만한 잔가지 치기는 끝났다는 뜻이지만 뒤집어보면 정작 핵심 쟁점들은 큰 진전이 없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이런 쟁점들로는 ▲자동차 관세양허 조건(철폐시기)과 기술표준 ▲특혜관세 대상을 결정짓는 공산품 원산지 기준 ▲금융.법률.환경 등 고급 서비스산업 분야들이 꼽힌다.
이 가운데 한국으로 봤을 때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분야는 한미 FTA 때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다. EU 측은 지난 5월 브뤼셀 7차 협상 때까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기한을 공산품 가운데 가장 긴 7년으로 설정하는 고집을 부렸다.
이후 차종별로 좀 더 단축하는 대안을 제시했지만 '즉시 철폐'를 원칙으로 하되 늦어도 3년내 모두 관세가 없어져야 한다는 한국의 요구를 총족하기는 힘든 상태다.
EU는 이에 맞서 유럽산 자동차의 안전기술 등 기술표준에 대한 한국의 수용을 관세철폐와 연계해 물러서지 않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의 대립이 아니라 유럽 산업계의 부정적 시각이다. 이반 호다치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사무총장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 자동차 시장을 열어줄 뿐 그 대가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럽 서비스 산업의 이익을 위해 자동차가 희생양이 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뤄진 그나마의 진전도 마땅치 않다는 이야기다.
공산품 원산지 기준도 평가가 엇갈린다. 지난 5월 7차 협상 뒤 EU가 상품 원산지 판정시 역내산 부가가치 비율과 세번 변경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다는 기존 방침에서 물러서 두 기준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큰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원산지 기준이 후퇴한 품목도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서비스 시장개방도 "한미 FTA 이상 수준은 안된다"는 우리 측 '못박기'에 EU 측이 일부 항목에서는 요구를 철회했지만 법률, 금융과 같이 자신들의 강점이 뚜렷한 분야에서는 개방요구를 멈추지 않고 있어 의견을 좁히기까지 상당한 줄다리기가 필요한 실정이다.
◇ 연내타결 어려워..정부 "내용이 중요"
양측의 이견을 좁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협상의 모멘텀 회복이 시급해졌다. 5월 7차 협상 뒤 여러 차례 분야별 회기간 협상이나 수석대표 절충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목할 만한 진전이 없는데다 세계를 휩쓰는 금융위기와 미국 민주당 정권의 출범으로 세계적으로 보호주의가 고개를 들 여건이 형성돼 협상의 모멘텀을 살리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현재까지 EU가 무역.투자의 자유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10월 초까지 협상을 이끌어온 피터 만델슨을 대신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맡은 캐서린 애쉬튼은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협상에 불만을 품은 유럽 자동차 업계에 대해 "한국과의 FTA는 서비스, 화학, 기계 및 가공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교역 증진을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5일에는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신정부가 미국시장을 닫기보다는 투자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미국의 해외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이것이 "창의적이며 기업을 보호하면서 무역도 활성화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금융.실물 동반위기라는 세계적 분위기상 한.EU FTA가 그간의 의견차를 일거에 좁히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는 쉽지 않다.
정부도 현재 "EU와의 FTA를 조기 타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기존 입장을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연내 타결'에 대한 언급에서는 이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연내 타결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도 "중요한 것은 '시간'보다 '내용'"이라고 강조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