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달러 유동성 부족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의 책임을 은행과 대기업, 또 존재하는지 확실치도 않은 투기세력 등에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 논란을 빚고 있다.
강만수 장관은 지난 5일 시중 은행장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해외자산 매각이나 외화예금 유치 등 달러를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펼쳐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은행에 대해서는 페널티 금리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했다.
외환당국의 유동성 공급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살 길을 찾으라는 주문이었지만 은행권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제시한 자구노력들을 이미 시행 중일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경색 위기 속에서 해외자산을 제 값에 사 줄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이 강 장관의 발언을 외화 유동성 수급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을 부추기고 말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달러 유동성 부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 만큼 내다 팔 자산은 모두 팔아치운 상황"이라며 "신뢰감을 줘야 할 정부가 시장과 은행권에 불안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 이어 강 장관의 표적이 된 것은 시장의 투기세력들이었다.
지난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갑작스럽게 재정부 기자실로 내려와 브리핑을 진행했다.
신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내 외환시장이 대외여건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거칠게 말하자면 냄새가 난다"고 말해 외환시장에서 환율 폭등을 조장하는 투기세력이 존재함을 시사했다.
다음날 금융감독 당국은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불법매매 및 내부정보 유출 행위 등이 있었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가 환 투기를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 등 민간 부문을 압박하게 되면 오히려 정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출로 막대한 규모의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기업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강 장관은 7일 국감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번 달부터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위기 상황인 틈을 타 투기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대기업의 경우 누구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같은 발언은 환율 급등으로 대기업들이 수출대금을 외환시장에 풀지 않고 자체 보유하고 있다가 수입 결제하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기업의 외환 거래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며 "기업을 상대로 국가 경제를 위해 자제해달라고 당부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환율 안정을 위한 각종 대책에도 외환시장의 불안심리가 해소되지 않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지원하던 대기업까지 압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환율 폭등 사태를 진화하는데 실패하자 대기업을 상대로 관치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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