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9일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시장에 원화를 충분히 공급함으로써 경기하강을 최대한 막고 기업, 가계 등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우리나라 역시 금융 경색과 실물 경제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자 경기 하강 속도를 완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 주요국 금리인하 흐름에 동참
한은이 금리를 내린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이 실물로 옮아붙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 성장률은 내년에 3%대로 떨어지는 등 올해보다 훨씬 나빠질 것으로 예측 기관들은 전망하고 있다. 경기하강은 금융불안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는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보도자료에서 "기준금리 인하는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고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좋은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잠재력 아래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몇 분기 나타날 수 있다"고 경기상황을 우려했다.
한은 관계자는 "글로벌 위기에 대응한 전세계적 공조체제에 참여할 뿐아니라 서둘러 내수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금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로 안정된 것도 금리인하에 기여했다.
한은은 그동안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두바이유가 배럴당 74.56달러로 떨어지는 등 국제유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안정되자 한은은 물가부담을 덜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상수지가 10월에는 흑자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이번 금리인하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성태 총재는 "10월부터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연간 적자규모는 110억달러 규모로 일반적인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 물가보다 경기가 급하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유동성 완화에 공조한다는 차원에서 금리 인하는 필요한 조치라고 밝혔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단은 미국과 유럽의 금리 결정과 환율 움직임이 관건이었는데, 주요국들이 금리를 일제히 내린 만큼 향후 한은이 금리인하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화유동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금리를 내려 원화를 더 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현 시점에서 금리 카드를 아낄 필요가 있지만 글로벌 차원의 금리인하 기조를 감안한다면 한은도 금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태 총재는 "당장은 물가 압력이 남아있지만 앞으로는 그 압력이 서서히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반면 경기가 나빠질 가능성은 조금 더 커지는 쪽으로 한은과 금통위의 시각이 조금 바뀌었다"고 금리인하의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고공행진'을 하는 물가, 환율의 지속적인 불안 등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은 시장의 안정이 중요하지만 결국은 물가냐 경기냐의 문제"라며 "물가가 소폭 안정된다 하더라도 3%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금리를 내리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환율의 변동성이 과도하게 크고 시중의 유동성은 여전히 풍부하다"며 "4분기에 경상수지가 소폭 흑자로 돌아선다 하더라도 연말에 외화자금 수요가 몰려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환율이 쉽게 진정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 금리인하 적절성 논란
현 단계에서 정부나 중앙은행의 최대 과제는 달러 유동성 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달러 유동성 위기가 지속된다면 이는 외환위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해결방안은 달러 유입을 촉진시키고 유출을 최소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 금리 인하는 이런 해결방안에 역행한다는 것이 종전의 한은 판단이었다. 금리인하가 채권시장에서 달러 유출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통위는 예상과 달리,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전날 세계 각국들이 금리인하에 나선 것이 금통위원들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성태 총재는 "주요국들이 공조해서 기준금리를 내렸기 때문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더라도 금리차에 따른 자본이동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금리차를 감안한다면 주요국들이 금리를 내렸기 때문에 한국도 인하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국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만큼 외화유동성 사정은 심각한 상황이다.
선진국의 경우 외화유동성 문제가 한국만큼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의 금리인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또 내년 이후에 경기가 더욱 빠르게 하강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금리인하 카드는 좀더 아껴둘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