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샤라프 대통령은 이날 주요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대국민연설에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법률 자문 및 정치적 동지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사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내 미래를 국민의 손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중으로 의회에 사퇴서를 제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지난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8년 10개월간 이어진 무샤라프의 철권 통치가 정식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집권연정의 탄핵 절차 개시를 하루 앞두고 나온 무샤라프 대통령의 사임 발표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수순이다.
파키스탄인민당(PPP)과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이 주도하는 집권 연정이 지난 2월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능한 상·하원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한데다 무샤라프를 지지했던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Q)에서도 이탈 세력이 점차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무샤라프의 권력기반인 군부와 정보부(ISI) 등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고 과거 대 테러전 파트너로 무샤라프를 감쌌던 미국마저 등을 돌리면서 무샤라프가 국회 해산이나 국가 비상사태 선포 등으로 맞설 여력도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강력한 탄핵안을 마련한 집권연정이 탄핵 절차 개시 전날까지 사임 가능 시한으로 정함에 따라 무샤라프는 처벌로 이어질 탄핵을 고집하기보다는 자진사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집권연정측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연정 대변인인 셰리 레먼 정보부 장관은 "대통령사임은 민주세력의 승리"라며 "오늘 오랜 기간 이 나라를 짓눌러왔던 독재의 그림자가 종말을 고했다"고 논평했다.
또 파키스탄의 주요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춤을 추며 군부 독재자의 사임을 환영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러나 무샤라프는 이날 마지막 연설에서 "나에게 제기된 어떠한 탄핵 사유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라며 집권연정의 탄핵 추진이 부당함을 항변했다.
우르두어로 진행된 연설에서 그는 "지난 9년간 내가 행한 모든 업무는 충심에서 우러난 것이며 우리 정부는 파키스탄과 국민을 최우선으로 두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호소했다.
그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음해하고 나에 대해 거짓 주장을 펴며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며 "그들은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고 믿겠지만 이런 행동이 국가를 망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탄핵 절차에 돌입하기 직전 사임을 선택함에 따라 무샤라프는 8년 10개월간의 통치 기간에 저질렀던 헌법 및 법률 위반에 대한 처벌을 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치권의 성향이 변화무쌍한 만큼 그가 퇴임 이후 보통 사람으로 돌아가 생활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