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샐러리맨의 황제’로 불리는 한 기업인이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고 또다시 변신을 시도해 화제가 되고 있다.
탕쥔은 자신이 중국 전문경영인의 개척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화제의 주인공은 MS중국법인 총재와 중국 온라인게임업체 성다(盛大)네트워크 CEO를 지낸 탕쥔(唐骏•46•사진).
탕쥔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출발해 거액의 몸값을 받는 기업 CEO 자리에까지 올라 중국에서는 샐러리맨의 황제로 불리는 인물이다.
탕쥔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10억위안(한화 약 1500억원)의 몸값 대우를 받고 성다를 떠나 중국 신화두(新华都)그룹 총재겸 CEO로 자리를 옮긴다”고 밝혔다.
탕쥔의 이번 변신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건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중국 업계에서 전례가 없는 탕쥔의 천문학적인 몸값. 다른 하나는 중국 업계에도 탕쥔이 처음으로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과 정착에 초석을 마련했다는 의미 등이다.
탕쥔이 받게 되는 10억위안은 모두 스톡옵션, 주식 등을 산정한 수치이다. 때문에 앞으로 보유주식의 가치상승에 따라 실제 몸값은 더욱 올라가게 된다. 이 몸값을 현행 세법에 따라 계산하면 소득세만도 4.5억위안이나 된다. 그러나 전부 주식으로 받는 만큼 세금납부와는 상관이 없다.
이 몸값은 성다에서 신화두로 옮기면서 받게 되는 일종의 스카우트비나 이적료에 해당된다. 업계는 외국기업에는 흔하지만 중국에서는 전문경영인 몸값으로 최고 액수로 보고 있다.
탕쥔은 “단지 몸값 10억위안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내가 신화두에 줄 수 있는 가치는 이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탕쥔은 신화두와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 탕쥔은 “신화두가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라며 “MS와 성다에서 오랜 일한 만큼 신화두에서도 장기간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탕쥔의 이번 변신이 눈길을 끄는 대목은 몸값 외에도 그동안 일해온 업종과 전혀 다른 분야로 둥지를 옮겼다는 점이다.
탕쥔은 지난 20여년동안 IT, 인터넷 등 분야에서 주로 경험을 쌓아왔다. 그러나 신화두는 유통, 호텔, 건설, 광업, 여행, 투자 등 다양한 업종을 망라한 종합형 기업집단이다.
탕쥔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업무관리, 기업경영, 전략, 투자, 자본운용 등은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또 탕쥔은 중국에서 성공한 대부분 기업인들이 창업자라는 점과도 다르다. 탕쥔은 “남들보다 많은 자원, 돈, 기술 등을 가지고 있어 창업할 기회도 많았다”며 “그러나 나는 최고의 전문경영인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MS 중국법인 총재시절 탕쥔(가운데).
탕쥔은 MS 중국법인장 시절 중국 최고의 전문경영인 자리에 오르고 싶은 꿈을 가졌었다. 이제 그 꿈에 한발 더 다가간 셈이다.
또 “중국은 앞으로 5~10년안에 많은 전문경영인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중국기업의 미래가 전문경영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탕쥔은 자신이 받는 몸값보다 중국에서도 전문경영인의 가치가 인정받았다는 데 대해 최대 의미를 두고 있다.
탕쥔은 “국내에서 전문경영인 몸값에 대한 이런 사례는 아직 없다. 앞으로 이같은 제도와 규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제 적어도 나 혼자만이라도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고 자평했다.
탕쥔은 1962년 쟝수성(江苏省) 창저우(常州)에서 태어났다. 중국 북경우전(邮电)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전자공학 석사, 컴퓨터학박사 등을 마쳤다. 중국에서 성공한 대부분 기업인들이 청화대, 북경대 등 소위 명문대 출신인데 비해 탕쥔은 그렇지 못한 것도 비교된다.
탕쥔은 유학시절 이미 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일본유학 시절에는 노래방점수채점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훗날 이 기기는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탕쥔은 그전에 기기를 당시 8만달러라는 ‘저가(?)’를 받고 삼성에 팔아 넘겼다.
탕쥔은 “이 기기가 그렇게 히트칠 줄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며 “이미 그 때 빌게이츠를 능가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탕쥔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이민알선 등 사업들에 손을 댔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 때 탕쥔은 늘 마음속에 ‘왜 MS는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것이 MS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하게 한 계기가 됐다.
탕쥔은 32세때인 1994년 MS에 들어가 평범한 엔지니어로서 첫출발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대기업에서 2년만 일하고 다시 개인사업을 시작하자는 각오였다.
윈도우 개발팀 프로그래머로 피나는 노력끝에 입사 1년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개발책임자 자리에 앉았다. 초고속 승진인 셈이었다.
1997년 MS가 처음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500만달러를 투자해 상하이에 설립한 기술지원센터 개발부문 고급책임자를 맡았다. 4년반만에 미국본사를 제외한 세계 유일의 기술지원센터로 키운 실적을 인정받아 2002년 3월에 MS 중국법인장에 올랐다.
2004년 성다로 옮길 당시 높은 실적을 인정받아 MS 종신명예총재로 추대됐다. MS 입사 10년만이었다. 당시 수입은 1억위안(한화 약 150억원)을 넘었다.
지난 2004년 중국 온라인게임업체인 성다네트워크 CEO로 영입될 당시 탕쥔(왼쪽).
탕쥔은 MS에서 성다로 옮기면서 이미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중국내 최고의 대우와 칭호를 얻었다. 당시 발행가 11달러의 스톡옵션 250만주를 받았다.
성다는 4~5년전 한국내 온라인게임업체와 저작권 문제로 소송까지 벌인 업체로 국내 업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탕쥔은 성다에서 일급 50만위안(한화 7500만원) 몸값을 받아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 때부터 탕쥔은 샐러리맨의 황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탕쥔은 성다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적자기업이던 성다를 분기수입만도 1억달러 이상인 알짜기업으로 키웠다. 탕쥔은 성다의 자산가치를 90억위안 이상이나 높였다.
탕쥔이 신화두에서 당장 맡을 첫번째 주요 임무는 그룹이 추진중인 관계사들의 성공적인 주식상장.
신화두는 최근 신화두유통센터, 우이산여행사 등 2개사의 A주 증시 상장을 신청해 놓고 있다. 또 현재 홍콩H주 증시에 올라있는 즈진(紫金)광업의 A주 증시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탕쥔은 앞으로 신화두에서 일반관리부터 장기전략, 그룹운영, 대외투자, 자본운용 등 업무를 맡게 된다. 신화두를 중국내 일류기업을 넘어 세계적 일류기업으로 키우는데 전력할 계획이다.
본사가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인 신화두그룹은 현 천파슈(陈发树) 회장이 지난 1987년 푸젠성 샤먼(厦门)에서 소규모 일용잡화점을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1995년 푸저우에 처음으로 신화두백화점을 세웠고 2000년에는 즈진광업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랐다.
이후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 기계공업, 부동산 등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면서 푸젠성 최고기업으로 성장했다. 천 회장은 지난해 자산보유액 199.3억위안으로 중국내 부호 16위에 올랐다.
탕쥔은 “내가 신화두를 선택한 이유는 유통, 여행, 부동산, 기계업 등 무려 8개 분야의 전통적인 업종을 두루 가진 거대기업이라는 점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분야에 도전하게 돼 기대가 크다. 개인적으로 중국에서도 전문경영인 제도가 더욱 많은 업종으로 널리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건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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