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팔란티어와 네이버, 그리고 우리 증시

2024-11-14 17:54

명진규 증권부장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사루만이 들여다보는 아티팩트가 있다. 감시, 감청하고 적진의 정보를 탐색한다. J.R.R 톨킨은 넓게, 멀리 감시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 아티팩트에 '팔란티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여 년전 페이팔 매각으로 엄청난 돈을 거머쥔 피터 틸은 팔란티어를 창업했다. 사업 아이템은 당시 IT 업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던 '빅데이터'였다. 팔란티어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사기 예방, 마약·인신매매 네트워크 제거, 정부 지출 효율화, 기업 지재권 보호 등 각종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창업했다. 

사업 시작부터 미국 국방부, CIA, FBI가 관심을 보였다. 주요 정보기관이 수백만 달러의 프로젝트를 맡기고 컨설팅을 의뢰했다. 당시 화제가 된 것이 정부에 제공한 플랫폼 '고담'이다. 

대규모 범죄를 예방하거나 군사 작전에 특화된 플랫폼으로 차량, 항공기, 선박 등에 센서를 탑재해 빅데이터를 모아 자원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데 특화한 솔루션이다. 

매년 적자를 기록했지만 팔란티어는 전폭적인 미국 정보기관들의 지원 아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다.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을 더해 실시간 추론으로 플랫폼을 고도화하며 방대한 AI 학습 데이터를 쌓기 시작했다. 

정보기관 프로젝트로 플랫폼의 효용성을 확인한 팔란티어는 기업용 '파운드리' 플랫폼을 내놓으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고담과 유사하지만 재무, 인사, 물류 등 기업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추적, 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꾸준히 적자폭도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흑자전환했다.

최근에는 S&P 500에도 편입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AI 기업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팔란티어가 경쟁사들은 확보할 수 없는 최고급 데이터로 AI를 학습시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20년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정부의 초기 투자, 계속된 적자에도 끊임없이 투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버팀목인 미국 증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인재와 기술력이 그것이다.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네이버, 다음을 비롯한 우리 포털들도 빅데이터가 미래 산업이 될 것이라며 목청을 높일 때다. 빅데이터를 통해 검색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등 성과도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AI 고도화에 힘쓰고 있지만 큰 성과가 없다. 

AI로 인한 변혁은 단순히 플랫폼에서 그치지 않는다. 테슬라는 얼마 전까지 전기차 생산 기업이었지만 지금은 자율주행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전기차야 중국에서 반값으로 만들 수 있지만 자율주행은 다르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누적 주행 거리는 10억 마일을 넘어섰다. 증시를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기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AI 시대가 가속화 할수록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자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오픈AI의 챗GPT, 마이크로소프트 빙, 구글 바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더 많은 엔비디아 칩을 확보하고 더 뛰어난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을 시켜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도 막대한 투자를 집행한다지만 엔비디아 칩 확보에서도 밀리고 학습시킬 데이터 양도 턱없이 부족하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데 우리 증시와 자본시장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창업 2년차인 AI 검색엔진 퍼플렉시티의 기술 경쟁력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앞선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코스닥 대신 나스닥에서 기업공개를 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AI를 비롯한 기술 패권의 주도권을 잡은 이유는 기업들이 필요한 만큼, 적자를 이겨내고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정도의 풍부한 자금이 증시에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과 증시가 동시에 어려움에 빠진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기업들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주주들 돈으로 신규 사업 사들이기에 바쁘다. 일부 기업은 주주 돈으로 경영권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 돈 주고 사온 성장동력과 주주들 돈으로 지킨 경영권이 온전할 리 없다. 주식시장이 박스권에 갇혀 떠나는 것이 아닌, 기업들의 한심한 작태에 실망해 투자자들은 떠난다.

정치권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금투세 없앴는데 주식시장은 왜 내리냐며 비아냥거릴 여유가 이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