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쓸데있는 금융백서] 다시 돌아온 '답정너' 카드수수료 재산정

2024-02-16 12:0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도 어김없이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재산정 주기가 돌아왔다. 수수료 논의는 돌아올 때마다 많은 논란과 우려를 쏟아냈지만, 결과는 항상 '인하'로 같았다. 지난 2007년 이후 줄곧 떨어지기만 한 수수료율에 금융당국이 현실화 논의에 나서기도 했으나, 수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카드 업계는 생존 위기에 놓여 있으면서도, 소상공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정의 목소리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14차례 연속 '인하'···3년마다 돌아오는 수수료 재산정
신용카드 수수료율이란 가맹점이 카드사의 결제시스템을 이용하는 대가로 총금액에서 카드사에 지급하는 수수료의 비율을 말한다. 현재 카드사는 업종별로 수수료의 최소·최대 범위를 정해놓고 있다.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에 따라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가 도입됐다. 이 제도에 따라 카드 업계는 3년마다 카드 결제에 수반되는 적정원가에 기반해 적격비용과 수수료율을 결정한다. 지난 2021년에 이어 올해 3년 만에 수수료율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특히 우대수수료가 적용되는 연 매출 30억원 이하의 영세·중소 가맹점의 경우 국회와 정부·당국이 직접 나서 수수료율을 결정한다. 이때 적격비용은 일종의 카드 수수료 원가를 말한다. 자금조달비용과 일반·위험관리비, 결제대행사(VAN) 수수료율 등이 고려된다.

하지만 적격비용 제도가 도입된 이후 수수료율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조달·리스크 비용이 올랐다면 상황에 맞게 적격비용을 인상하고, 수수료율도 함께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7년부터 수수료율을 14차례 조정하는 동안, 논의 결과는 모두 인하로 끝이 났다.

실제 2007년 당시 4.5%였던 수수료율은 연매출 4800만원 미만 영세가맹점 2.3%, 일반 가맹점 3.6%로 떨어졌다.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이 개정된 이후 2013년부터 적용된 수수료율은 연매출 2억원 이하 가맹점에서 0.3%포인트 내린 1.5%로, 일반가맹점은 3.6%에서 2.6%로 인하됐다. 이후로도 수수료율은 줄곧 인하됐다. 현재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은 0.5~1.5%를 부과한다. 우대수수료율은 △3억원 이하 0.5% △3억원 초과 5억원 이하 1.1%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1.25%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 1.5% 등이다. 그 결과 전국 가맹점의 96.2%가 우대수수료를 적용받고 있어 사실상 0%대의 수수료율을 부담하고 있다.
 
'정치용 카드'로 전락한 수수료율···진짜 논의는 없었다
카드 수수료율은 왜 줄곧 내리기만 했을까. 이는 적격비용 제도가 합리적인 원가를 산정하라는 본래의 취지를 무시한 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수수료율을 내리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 수수료율을 부담하는 가맹점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영세한 소상공인·자영업자로 구성돼 있다.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라는 취지로 수수료율 문제에 개입해 왔고, 매번 수수료율 인하 방침을 결정한 뒤로는 여야가 서로 자화자찬 경쟁을 벌이곤 했다. 더욱이 당국에서도 '서민 경제 보호'를 외치기 시작하면 사실상 카드사는 당정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논의도 카드 업계는 사실상 '반 포기' 상태다. 카드사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적 논리에 따라 카드 수수료율이 결정됐고, 올해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업황에 수수료를 내릴 여력도 없다. 하지만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카드 수수료율 문제가 정치 이슈로 올라오면 결국에는 또 수수료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렇듯 카드 수수료율이 고꾸라지는 사이 카드 업계는 본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에 빠졌다.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 2012년 영세가맹점 수수료율이 4.5%에서 0.5%로 떨어지는 사이 같은 기간 여신전문채권(여전채) 단기물(AA+, 33년물) 금리는 절반도 채 줄지 않았다고 말한다. 여기에 2021년부터 시작된 금리인상기를 비롯해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여신업권의 조달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실제 2% 초반이었던 여전채 금리는 지난해 6% 목전까지 치솟았다. 카드사는 은행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어 채권을 발행해 영업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

카드 본업의 수수료율은 고꾸라지는 사이 유일한 조달 수단인 여전채 금리가 상승해 조달 비용을 올리면서 카드사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재까지 지난해 실적을 공개한 5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하나·우리카드)의 당기순이익은 1조8641억원으로 1년 전(2조387억원) 대비 8.6% 줄었다. 같은 기간 이자비용(2조5755억원)은 29.49% 불어났다. 하나카드만 떼고 보면 이자비용(3296억원)은 1년 새 1.8배 커졌다. 카드이용 실적이 늘어난다고 해도 실적이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수료 개선 논의만 수년째 반복···전환점 맞을 수 있나
이에 카드 업계뿐만 아니라 당국에서도 합리적인 산정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년 전부터 제기됐으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당초 지난해 말까지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에 대한 개선안 논의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22년 2월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 개편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가맹점, 소비자, 카드 업계, 전문가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으나, 2년이 넘는 지금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개선안의 결과로 수수료율을 인상하는 것 대신, 재산정 주기를 늘리거나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재산정 주기에 대한 논의는 TF가 구성되기 이전부터 논의됐다. 2021년 수수료율 재산정을 논의할 당시에도 금융위 안에서는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심했었다. 기존 법률을 없애거나 당장 전면 개편하기 어려우니 법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주기를 연장해 업계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부와 당국은 낮아진 조달 비용을 근거로 수수료율을 다시 한번 낮췄다.

카드 업계는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특정 주기를 정해두고 수수료율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면서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예컨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 금리가 급등할 때에도 카드사들은 시장 금리 상승을 바라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카드사들은 되레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큰 상품이나 서비스를 줄이고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소비자 효용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 역시 합리적인 수수료율을 산정할 수 있도록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현행 제도는 수수료 산정 수식이 앞으로 하락할 것만 예상해서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네이버나 카카오 역시 결제시장 내 같은 플레이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카드사보다 더욱 유리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영업이익 등 실적도 함께 고려해서 수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