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제국의 위안부' 명예훼손 무죄 판단…"학문적 주장으로 봐야"

2023-10-26 12:14
벌금 1000만원 선고 원심 파기 환송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26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이날 박 명예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표현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6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명예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이 유죄로 인정한 이 사건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박 명예교수는 지난 2013년 출간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도서에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위안부가 돼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사람', "위안부들의 동원 과정에서 일본군의 강제 연행은 없었다' 등의 표현이 담겼다.

1심은 박 명예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소된 35개 표현 중 5개 표현은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나, 나머지 30개 표현은 의견 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5개 표현 중 3개 표현은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2개 표현은 집단 표시에 의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1심을 뒤집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사실 적시로 인정 5개 표현 외에 추가로 6개 표현을 합쳐 총 11개 표현을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각 표현은 허위 사실과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고 피해자도 특정됐다"며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면서 무죄로 봤다.

이에 대해 "피고인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던 중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 결과로 이 도서를 발표했다"며 "그 과정에서 통상의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 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을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이어 "피고인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학문적 표현의 자유란 가치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 그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한편, 타인의 명예, 자유, 자기 결정권, 사생활의 비밀 보호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 등 연구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학문적 표현물로 인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성립 판단 시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