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디지털 대전환 '기본'에 충실해야 성공한다

2022-10-27 17:12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대한민국 축구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시작은 기본을 충실하게 다진 것이었다. 당시 명장 히딩크 감독은 우리 국가대표팀을 보고 화려한 드리블과 슈팅과 같은 개인기가 아니라 빠른 공수 전환과 압박 축구를 소화해낼 수 있는 강인한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대표팀은 시급한 기초 체력 확보를 위한 체계적 훈련에 돌입했다. 세계적 명장으로부터 새로운 전술과 기술 훈련을 기대했을 우리 선수들은 지옥 훈련이라 불리는 20m 셔틀런, 웨이트 트레이닝 등 체력 훈련에 연일 녹초가 되면서 기초 체력을 키워갔다. 90분 내내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체력이 생기자 히딩크 감독의 현대 축구 전술에 적응하며 기적의 4강 신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성과가 나온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 경제가 당면하고 있고 우리의 명운이 달려있는 디지털·그린·문명의 3대 대전환의 성공적 완수도 기본의 충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시급한 디지털 대전환도 그 정의와 의미의 올바른 이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으로 디지털 전환, 디지털 변혁, 디지털 대변혁 등 여러 용어로 번역되고 해석도 다양하여 올바른 해석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시급하다.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은 데이터이다. 데이터는 모든 사람, 사물 간의 연결에서 나온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실시간 빅 데이터가 생성, 수집되고 이를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분석하여 새로운 부가가치와 성장동력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대전환의 1단계는 디지티제이션(Digitization)으로 디지털 데이터화이다. 숫자 중심의 정형 데이터는 물론 이미지, 사운드 등 비정형 데이터도 모두 디지털 데이터화하는 단계이다. 제조현장에서 제조공정 데이터, 제품 검사 데이터, 원가 데이터 등이 예이다. 2단계는 디지털리제이션(Digitalization)으로 수집된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지능이나 수학적 기법으로 분석하여 제반 프로세스를 혁신하는 디지털 혁신 단계이다. 제조현장에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여 품질, 원가, 납기, 성능을 혁신하는 것이 예이다. 3단계는 고객, 협력사 및 이해관계자와의 연결을 통해 수집된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단계이다. 최근 고객의 디지털 경로, 디지털 흔적 등 각종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대전환 기술을 적용하여, 종래의 대량 생산·소비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객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3단계 정의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1단계를 준비 중이거나 2단계에 진입한 기업들이 일부 있다고 진단된다. 디지털 대전환을 잘하고 있다는 대기업의 경우도 대부분 디지털 대전환을 정보화나 자동화로 오해하고 있어 1, 2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3단계에 들어섰다고 하는 일부 기업들도 들여다보면 대부분 1, 2단계에 대한 기본 역량 없이 바로 3단계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하고 있어 히딩크 감독의 진단처럼 기초 체력 없이 슈팅에 전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즘 많은 기업인들을 만나면 디지털 대전환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으나 구체적 실행방법은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는데 회사 내 전문가가 없다’, ‘정보화와 자동화가 필요하다는데 역량도 재원도 부족하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이 모두 디지털 대전환의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작은 마케팅, 개발, 제조, 판매 등 기업의 제반 가치사슬의 데이터 수집에서 시작된다.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전략, 매출 및 비용 분석, 제조 데이터 분석 등이 기본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기본인 1, 2단계가 잘 이루어져야 3단계인 비즈니스 모델 및 전략 혁신이 가능해져 진정한 디지털혁신 기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린 대전환도 그 핵심인 탄소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기업 경영의 필수 요건이자 새로운 규범이 될 탄소중립과 ESG에 대한 이해나 접근방법도 의견이 분분하여 공감대 조성이 시급하다. 2050년까지 달성하기로 국제적 약조를 한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없애거나 배출한 만큼 흡수하여 순배출량을 제로화하는 것으로 ‘넷제로(Net Zero)’라고 불린다.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무역 및 환경규제로 수출이 어려워지게 되어 제조업과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핵폭탄급 충격을 받게 되는 중차대한 이슈임에도 국민적 관심은 아직 높지 않다. 30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지금 바로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막대한 비용과 에너지 사용 절제 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바로 기본이다. 향후 28년간 현 정부를 포함하여 6개 정부가 차기 정부로 미루지 않고 지금부터 일관된 정책을 펼쳐야 가능한 일이다. 탄소중립은 전 국민, 전 기업의 각고의 에너지 절감 노력과 함께 에너지·환경 기술, 순환경제, 수소경제 등 첨단 기술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 넣어야 가능한 목표이다. 탄소중립도 기본이 중요하다.
 
ESG 경영은 그린 대전환의 핵심 동력으로 역시 올바른 이해와 기본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적 ESG 열풍의 배경 및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블랙록과 같은 투자자들이 촉발한 면도 있으나 근본적 원인은 소비자의 의식 변화에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정보화에 능하여 친환경과 사회 공정성에 매우 민감한 MZ 세대(15~40세)가 소비자의 주류에 진입하고 자신은 물론 기성세대의 구매 성향도 주도하면서 ESG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익 중심의 주주 자본주의에서 고객, 직원, 지역사회를 포함하는 포용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부상하고 탄소중립이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탄소중립과 ESG가 다소 주춤한 듯 보이나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ESG의 기본은 결국 MZ 세대 등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전 직원 참여와 기술혁신을 통한 진정성 있는 고객 감동 노력이 성공의 기본이다. 이러한 기본 역량이 없이 ESG 조직 중심으로 지표를 좋게 하려는 조치에만 매달리면 결국 ‘그린 워싱’, ‘ESG 워싱’으로 흐르며 실패하게 된다. ESG도 기본이 중요하다.
 
히딩크의 교훈대로 기본에 충실함이 대전환 시대에 기업은 물론 국가의 생존과 발전의 첩경이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