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위탁지점장' 근로자인가...대법 "업무 형태 따라 달라"

2022-05-05 17:04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보험사 지점을 운영·관리하는 '위탁계약형 지점장'도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다만 대법원은 이날 나온 다른 사건에서는 위탁계약형 지점장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들 판단은 '노동 형태의 종속성' 여부에 따라 엇갈렸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한화생명보험과 위탁계약을 맺은 지점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한화생명보험은 2018년 A씨에게 규정 위반을 이유로 위탁계약을 해지했고, A씨는 '부당 해고'라며 중노위에 구제 신청을 냈다. 중노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며 각하 처분했고 A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원심은 A씨가 '법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규직 지점장은 아니어도 실제 업무 형태가 사실상 '정규직 지점장'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가 보험사가 제공한 지점 사무실에 정규직 점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에 출퇴근하며 업무를 수행한 점 △지점 사무실 운영 비용을 모두 보험사가 제공했고 지점장이 독립적으로 사업을 영위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또 △이들이 지급받은 수수료 등은 지점 운영이라는 근로의 대가로 임금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등도 근로자성이 인정된 이유로 들었다.

같은 날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도 농협생명보험의 위탁계약형 지점장 B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확정했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원고의 업무 형태가 정규직 근로자의 업무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했다.
 
자율적인 업무 환경 고려하면 '근로자가 아닌 독립된 사업자'
반면 같은 날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위탁계약형 지점장들이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 주식회사와 흥국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등 청구 소송에서는 근로자성을 부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같은 위탁계약형 지점장에 대해 정반대 판단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은 보험사가 지점장들을 사실상 지휘·감독했다고 보기 어려워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보험사들이 지점장들에게 업무계획 등을 제시했지만 상당한 지휘·감독을 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이들은 자율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시했다.

또 △지점장들 수수료에 큰 격차가 있었던 점 등에 비춰 볼 때 수수료가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점 △보험사가 위탁계약형 지점장에 대한 근태관리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일부 보험사의 경우 이들이 자신의 비용으로 업무보조 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등 독립된 사업자로서의 비용이나 책임 부담을 인정할 요소가 있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대법원은 '형식적 계약 내용'보다 '실질적인 사실관계'에 무게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근로자성 판단 대상이 모두 보험회사 위탁계약형 지점장으로 같다고 해도 개별 사건에서 업무 형태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다르다"며 "직종이나 지위에 따라 기계적으로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