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이 바꾼 기업] "과일 스무디 맥주, 해외서 인기… K맥주로 키워야죠"

2022-04-27 05:00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 인터뷰
주세법에 과실비율 20% 제한 규정
중기옴부즈만, 시행령 개정 이끌어
50%로 확대… 국내 생산 길 열려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가 지난 20일 김포 소재 양조장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




대기업 위주 라거 일변도이던 국내 맥주 시장이 달라졌다. 최근 몇 년 새 수제맥주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과일이나 꽃 등 다양한 향을 가진 맥주들이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과일 향을 넘어 과일 맛이 나는 맥주를 국내에서 맛보기는 쉽지 않다. 해외에선 과일을 듬뿍 넣어 흡사 과일 스무디 같은 맛을 내는 맥주가 유행인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해외 과일맥주에 도전장을 낸 업체가 등장했다. 중소 수제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는 ‘크래프트브로스’가 그 주인공이다. 크래프트브로스는 올 상반기 안에 과일 맛이 나는 맥주를 국내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올해부터 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과일맥주 제조가 수월해진 게 이 같은 도전의 배경이 됐다.
 
지난 20일 경기도 김포 소재 크래프트브로스 양조장에서 만난 강기문 대표(47)는 대형 맥주 탱크를 가리키며 “과일맥주 제조를 위해 따로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주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자마자 탱크를 주문하는 등 과일맥주 판매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해외 바이어(구매자)들이었다. 크래프트브로스는 국내 수제맥주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맥주를 수출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등 전 세계 10여개국이 대상이다. 강 대표는 이들 국가에서 과일맥주에 대한 수요를 확인했지만 국내 규제에 막혀 좀처럼 시도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강 대표는 “요즘 해외에서는 이른바 ‘스무디 맥주’라고 하는 과일맥주가 유행이다. 컵에 맥주를 따르면 과육이 둥둥 떠 있을 정도로 과일 비중이 높다”며 “유럽과 동남아 바이어들이 ‘크래프트브로스에선 왜 이런 맥주를 만들지 않느냐’고 문의했는데, 국내법상 어려워 나도 답답했다”고 전했다.
 
올해 2월 주세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맥주에 들어가는 과실 중량이 전체 재료 중량의 20%를 넘길 수 없었다. 20% 초과 시엔 맥주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기타주류면허를 취득하고 별도의 시설과 장비를 마련해야만 제조가 가능했다. 영세 수제맥주 양조장에서는 과일맥주를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유다.
 
강 대표는 “과일맥주는 보리‧밀 발효가 끝난 뒤 숙성 기간에 과일을 넣어 만든다. 과일로 발효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과실주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면서 “그럼에도 과일맥주가 과실주나 기타음료로 분류되면 그에 맞는 생산 기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 해외 수출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영세 양조장에선 기타주류를 위한 별도의 생산 설비를 갖추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대다수 양조장이 1억원이 넘는 캔입(맥주를 캔에 넣는 기술) 장비를 갖추지 못해 소매 판매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해외에서 수요가 있는데도 대응을 못하니 아쉬웠다”고 부연했다.
 
강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건의했고, 옴부즈만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주세법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냈다. 개정이 완료된 올해 2월부터는 전체 맥주 재료 중량의 50%까지 과일을 넣을 수 있게 됐다.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가 지난 20일 김포 소재 양조장에서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


 
강 대표가 옴부즈만의 규제 개선 효과를 체감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양조장을 차리기 전 강 대표는 서울에서 수제맥주 펍과 수입맥주 보틀숍(주류 매장)을 운영하며 국내 최초로 수제맥주를 캔에 담아주는 가게인 ‘캔메이커’를 열었다. 부산 ‘갈매기’나 강릉 ‘버드나무’처럼 유명한 수제맥주를 캔에 담는 진공포장 기술을 도입한 것.
 
그는 “해외에는 ‘드링크 로컬(Drink local)’이란 말이 있다. 지역 맥주를 마시자는 의미”라며 “캔메이커 사업을 한 건 국내 지역 맥주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보틀숍을 운영할 당시 수입맥주를 파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고, 이를 해소하고자 각 지역 양조장에서 수제맥주를 받아 캔으로 유통했다”고 전했다.
 
캔메이커 사업 호황과 함께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성장가도에 오른 것도 잠시. 강 대표는 관련 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는 “치킨집에서 페트병에 생맥주를 담아 판매하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캔에 담아 판매하는 건 불법이라는 게 국세청의 판단이었다”며 “안타깝게 사업을 접었지만 이후 옴부즈만이 규제 개선에 나서면서 맥주 포장‧배달이 합법화됐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을 접고 2019년부터 양조장을 시작한 강 대표의 목표는 여전히 ‘드링크 로컬’이다. 크래프트브로스는 김포에서 생산한 맥주 10여종을 전국 200여개 소매점에 유통하고 있다. 조만간 출시될 과일맥주에는 지역 특산 과일도 넣을 예정이다. 또 이를 해외에 수출해 한국의 로컬 맥주, K맥주로 알린다는 포부다.
 
강 대표는 “김포시 젊은 농부들과 협업해서 지역 특산 과일인 블루베리를 담은 과일맥주를 첫 번째 시제품으로 선보일 것”이라며 “해외에서 한국 맥주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수출 기대감도 크다. 주세법 개정으로 마련된 이번 기회가 판로 확대의 발판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기문 크래프트브로스 대표 [사진=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