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의 세계] 신용위험 포착하는 파수꾼... 경제위기 땐 '한계' 비판도

2022-03-02 18:00

 



지난달 말 우리 정부와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위한 협의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글로벌 신평사와의 협의는 항상 반복되는 연례 행사지만 언제나 시장과 언론의 주목도가 높다. 혹여 신용등급이 떨어질 경우 한국 경제의 대외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역시 늘 협의 전후 보도자료를 배포해 면담 과정에서 다뤄진 경제 현안에 대해 정부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곤 한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기업 역시 신용등급 동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낮고, 자금 조달 수요가 많은 기업일수록 그렇다. 등급이 내려가면 투자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미래 성장성에 대해서도 시장의 우려가 커진다. 신용평가사들이 제시하는 신용등급은 하나의 채권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해당 기업과 전체 산업에 대한 향후 전망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이 경제 위기에 앞서 경고음을 날리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보 비대칭성' 해소 위해 등장··· 소수 기업이 과점

신용평가사들은 재무정보를 토대로 국가나 기업의 부도 가능성을 분석해 신용위험을 등급으로 표시한다. 다양한 분석과 전망을 '등급'이라는 단순화된 지표로 표시해 기업 간 신용도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내부에 구축한 독자적인 평가 시스템을 통해 차주의 신용도를 평가하지만, 다른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이나 개별 채권에 대한 공신력 있는 평가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신용평가사다. 

신용평가사들은 개별 채권(issue rating)과 발행자(issuer rating)에 대해 평가를 수행한다. 이런 평가는 직접적으로는 기업의 영업활동에, 보다 넓게는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투자활동에 모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국내외 모든 신평사들은 해당 국가의 금융당국에 의해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무디스, 스탠더드앤푸어스(S&P), 피치 등 3개 민간 신용평가회사를 지난 1975년 국가공인 신용평가기관(NRSRO)으로 지정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법규에 따라 인가를 받은 회사들만 신용평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진입 장벽이 높은 탓에 글로벌 신용평가 시장은 무디스, S&P, 피치 3개 회사가 과점하고 있다. 신용등급 체계는 회사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만기 1년 이상의 장기채권의 경우 S&P는 최상위인 'AAA'부터 최하위인 'D'까지 22개 등급에 따라 평가한다. 같은 등급이라도 '+', '-'로 차등을 둔다. 

경제위기 발생하면 '무용론'도

신용평가는 기업의 주요 자금조달 경로인 회사채 발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경영권에 부담을 주는 유상증자와 달리 회사채는 회사의 부채에만 변동이 있다. 시장 신뢰도가 높은 우량 기업이라면 은행 대출보다 싼 금리에, 보다 장기적으로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등급 평가는 대부분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를 발행할 때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기업은 국내 평가사들의 신용등급이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다만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 평가사로부터 정기적으로 등급 평가를 받고 있다. 무디스(Aa3), S&P(AA-), 피치(AA-)로 국가신용등급 수준의 신용도를 인정받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비슷한 등급체계를 통해 신용평가를 수행한다. AAA부터 D까지 22개 등급이 있으며 통상 BBB등급을 기준으로 '투기등급'과 '투자등급'이 구분된다. 'BBB-'까지는 투자등급에 위치하며 그 이하인 'BB+'부터는 투기등급에 해당한다. 투기등급의 경우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보증이 없는 무보증 회사채 시장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내 기업 중 가장 높은 신용등급을 가진 곳은 KT와 SK텔레콤(SKT)이다. 통상 금융사나 공공 기관에만 부여되는 AAA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포스코, 현대차 역시 AAA등급으로 평가받았으나 각각 지난 2014년, 2018년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맡고 있는 신용평가사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발행사의 신용평가 의뢰에 따라 수익구조가 결정되기 때문에 평가 과정에서 발행사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또한 대개 사후적으로 등급 조정이 이뤄지다 보니 경제 위기가 닥치면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선제적으로 위기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신평사들이 구조화상품에 대해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한 일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