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수급난 원흉 꼬리표 탈원전 정책…2017년 수요예측 첫 단추부터 잘못
2021-07-19 00:01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연평균 1.3% 수요상승 예측…7차 계획(2.2%)보다 1% 포인트 낮아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호기, 월성 1호기 등 5GW 발전용량 공백
신한울 1~2호기, 신고리 5호기, 월성 1호기 등 5GW 발전용량 공백
아슬아슬 전력수급에 수요조절 나선 정부
18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연일 최대전력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12일 최대전력수요는 85GW로 예보치 84.4GW를 넘어섰으며, 13일에는 오후 5시 기준 87GW(전력공급 예비율 10.1%)로 집계됐다.
이어 14일에는 최대전력 사용 시간대인 오후 5시 기준 전력 사용량이 88GW를 기록했으며, 15일에는 최대전력수요가 88.6GW까지 치솟아 올여름 들어 최고치를 찍었다. 2018년 7월 13일 최대전력수요인 82.1GW보다 많다.
이에 따라 전력공급 예비율도 점차 위태로워지고 있다. 당초 전력공급 예비율은 혹서기를 맞아 한 자릿수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주는 전력공급 예비율이 10%를 웃돌며 전력 수급의 위기상황은 막았다. 다만 올해는 이른 무더위로 냉방기기 가동이 늘자 전력공급 예비력이 10GW를 밑돌기 시작한 시점이 지난해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
역대 여름철 전력수요 최고치는 2018년 7월 24일 92.4GW다. 당시 111년 만의 폭염으로 인해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전력공급 예비율은 7.7%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여름 폭염과 산업생산 증가 영향으로 상한전망 적용 시 전력수요가 94.4GW를 넘길 수도 있다고 봤다. 첫 고비는 다음 주로 예상했다. 보통 전력공급 예비력은 폭염과 산업생산 증가로 7월 넷째 주에 가장 낮아진다. 이때 전력공급 예비율은 한 자릿수에 진입하게 된다.
기상청은 오는 20일부터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강한 폭염과 열대야가 찾아올 것으로 예보했다.
7월 넷째 주에 전력공급 예비력이 5.5GW 밑으로 떨어진다면 '전력수급 비상단계'가 발령될 가능성도 있다. 전력수급 비상단계 발령은 2013년 8월 이후 한 번도 없었다.
비상단계는 전력공급 예비력에 따라 1단계는 준비(5.5GW 미만), 2단계는 관심(4.5GW 미만), 주의(3.5GW 미만), 경계(2.5GW 미만), 심각(1.5GW 미만) 순으로 구분된다.
단계별로 각 가정과 사무실, 산업체에서 냉방기기 가동을 자제하는 등의 비상 대책이 시행된다. 경계단계가 발령되면 사무실과 상점에서는 냉방설비 가동을 중단하고, 사무·조명기기, 가전제품을 꺼야 한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올여름은 전력수급 비상단계 1, 2단계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상고온 등 돌발 상황으로 인해 단계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전력수급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을 통해 8.8GW의 추가 예비자원을 확보한 상태다. 또 수요반응(DR) 시장에 참가하는 기업들과 간담회를 통해 전력수요관리의 협력도 다짐했다.
DR제도는 업체들이 전력수요가 높은 시기에 수요감축 요청을 받았을 경우 약정한 만큼 약정감축량을 달성하면 보상을 받는 제도다. 2014년 11월 전력거래소의 DR 시장이 개설된 뒤 현재 30개 수요관리사업자가 5154개 업체(총 4.65GW)를 등록해 참여 중이다.
안이한 수요예측이 탈원전 불렀다
혹서기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서 전력공급 예비율이 피크시간대에 한 자릿수로 진입했다. 전력수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에서도 다양한 해결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탈원전 정책의 후폭풍이란 논란은 계속 따라붙고 있다. 2013년 블랙아웃이 재현된다면 에너지 전환 정책이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13일 오후 4시 30분 최대 전력 수요가 87.47GW를 기록하며 전력공급 예비율이 9.9%를 기록했다. 전력공급 예비율의 한 자릿수 진입은 곧 위기가 닥칠 것이란 신호다. 다음 주 기온이 더 오르면 예비 전력 부족 현상은 심화할 전망이다. 예비 전력이 5.5GW 밑으로 떨어질 경우, 2013년 8월 이후 8년 만에 '전력 수급 비상 단계'가 발령될 수 있다.
이 같은 낮은 전력공급 예비율에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되던 원전 계획이 뒤집혀 제대로 가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 수립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호기가 모두 가동하고 있어야 한다. 이들의 발전 용량은 각각 1.4GW로 3기의 원전만 합쳐도 4.2GW에 달한다.
하지만 2017년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이들 원전은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다. 아울러 2018년 조기 폐쇄가 결정된 월성 1호기의 발전용량 0.68GW도 빠져, 전력수급기본계획 변경 이후 약 5GW 규모의 발전설비가 사라졌다. 이 정도의 설비가 모두 가동됐다면 전력예비율에서도 5% 포인트가량 여유를 가지게 된다.
주한규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전력수급 문제의 원인으로 2017년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지목했다.
주 교수는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력수요가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따라 원전을 많이 지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로 전력수요예측을 했다"며 "이 예측은 다음 해인 2018년 최대 전력 수요가 92GW를 넘으면서 바로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측이 잘못됐으면 신한울 1~2호기 운영허가를 바로 내줬어야 한다"며 "첫 연료 장전을 마친 신한울 1호기가 가동되려면 아직 8개월이나 더 있어야 하고, 신한울 2호기도 이미 다 완공했는데 운영허가의 지연으로 계속 발이 묶여 있다"고 덧붙였다. 주 교수는 언급한 두 기의 원전이 가동됐다면 혹서기에 2.8GW의 전력이 추가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정부의 전력수요예측에 관해서도 주 교수는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전력수요예측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해야 하며 그게 진정한 전력수요예측"이라며 "만약에 과대예측을 해서 설비가 남으면 좀 손해를 보면 되지만, 전력이 모자랄 경우는 극심한 피해를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주 교수는 "전력수요예측은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걸 감안해서 보수적으로 잡는 게 맞는다"며 "이번에도 공교롭게 원전을 정비하는 기간이 겹쳐 전력수급에 위기가 온 것인데, 과거 2018년 수요감축 이야기가 다시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기상 영향에 따른 전력수요 전망치 변화가 영향을 끼쳤다는 정부의 해명에 대해 주 교수는 "전력수요예측은 기상변화를 항상 고려해야 하며 하루 이틀만 볼 게 아니라 멀리 봐야 한다"며 "그런 불확실성을 고려해서 마진을 두고 계획을 짜야 된다. 딱 맞게 해두고 예상보다 넘어갔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