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⑨] ‘프로핏’ 넘어 ‘비콥’…“지속가능한 기업 인증합니다”
2020-05-04 14:22
비랩코리아 정태은 매니저 인터뷰
[편집자주] 성수동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등 초호화 주거시설 반대편에는 수제화 거리‧철물점 등 낡은 흔적이 공존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 뷰티 전문점이 자리했습니다. 여기에 소셜벤처기업이 빈 공간을 채우면서 성수동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이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 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글=홍민지 루트임팩트 매니저] 지난 해 미국 주요 대기업 CEO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은 ‘회사가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을 폐기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 이익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은 ‘결속력 있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경영 그리고 이해관계자 포용이 화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비콥’ (B-corp) 운동이 있다. 2006년 미국에서 시작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이끌어온 비콥운동은 이해관계자를 배려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왔다. 비콥 인증을 부여하는 미국 비영리기관 비랩(B Lab)의 공식인가를 받아, 2019년 국내에도 비랩코리아가 설립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이라 여겼던 일들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 비랩코리아 정태은 매니저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비콥이라는 단어가 낯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대표적인 글로벌 기업으로는 친화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와 바디샵과 에이숍을 소유하고 있는 브라질 화장품 기업 나투라 (Natura&co), 엑티비아, 에비앙으로 익숙한 세계 최대 낙농회사 ‘다논(Danone) 등이 있겠네요. 유기농, 공정무역과 같은 것들이 상품에 대해 인증을 부여한다면 비콥은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거에요. 비즈니스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글로벌 사회책임 기업에게 부여되는 브랜드이자 비즈니스의 기준을 바꾸는 기업 혁신 운동입니다. “
-비콥 인증 과정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궁금하다.
“비콥 인증에서 가장 먼저 거쳐야할 관문은 BIA(B Impact Assesment)라는 평가인데요. 비콥 웹사이트를 통해 하실 수 있어요. 자가진단이고 무료인 플랫폼인데, 기업이라면 꼭 가지고 있는 5가지 이해관계자 영역 ▲지배구조 ▲지역사회 ▲환경 ▲고객 ▲기업구성원에 대해 평가하는 항목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예시를 들면, “보너스를 포함하여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직원의 급여는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정규직원 급여와 비교하여 몇 배의 차이를 보이는가?”, “여성이거나 취업 취약·소외 계층 출신의 비임원급 정규직원은 몇 퍼센트인가?” 등의 질문이 포함돼 있습니다.
BIA 점수의 상한선은 없지만, 만점은 300점에 가까워요. 그 중 80점 이상이면 인증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기업공개 질문 과정을 거칩니다. 법을 위반한 적이 있는지, 세금을 탈세한 적이 있었는지, 노동이슈나 환경문제 등과 같이 부정적인 이슈가 있다면 이러한 사항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확인합니다. BIA가 긍정적인 점수를 평가한다면 기업 공개는 부정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제도죠.”
-비콥 인증은 갱신형이다. 3년에 한번씩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회가 급속히 바뀌기 때문에 미처 평가하지 못한 항목들이 있을 수 있어서 BIA 항목들도 3년마다 갱신해요. 지금은 2019년에 업데이트된 버전 6인데요, 환경, 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영역을 강화하고, 공급망에 대한 질문이 추가됐어요. 제품 및 서비스가 원재료로부터 어떻게 생산·제조되는지 공급망을 포함하는 전 과정을 상세한 질문들로 보완했습니다. 판매되는 제품 서비스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개선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공급자 평가하는 절차 스크리닝이 존재하는지, 공급자 행동 강령이 있는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도 관리하는지를 확인합니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서 인증을 받아도 비콥은 공식적인 인증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맞아요. 인증서도 없고, 비콥선언문을 맺는 것이 전부에요. 대신 비콥 고유 마크를 웹사이트나 제품 패키징에 활용할 수 있어요. 또 비콥 홈페이지 내 비콥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이를 통해 고객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죠. 인재 유치 부분에서도 이점이 있는데요, 가치를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들은 다니고 싶은 회사로 꼽히기도 합니다.
투자자에게는 까다로운 비콥 인증과정을 통과한 해당 기업이 리스크 등 각 분야에서 이미 검증을 마쳤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고요. 특히 사회 임팩트를 중시하는 투자 회사들게는 비콥을 통해 수치가 제공되니까 투자 유치가 더 용이하다고 볼 수 있죠.
국내 기업들은 특히 글로벌 진출이나 네트워크에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어요. 점자 스마트 워치 회사인 ‘닷워치’도 비콥 인증을 받았는데, 해외 진출할 때 비콥 인증을 보고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나무 심는 소셜벤처 트리플래닛(Tree planet)도 비콥 인증 덕분에 오드리 헵번 가족으로부터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오드리 헵번 가족이 비콥 홈페이지에서 한국 인증 기업으로 트리플래닛을 보고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 후원을 먼저 제안했다고 하더라고요.”
-비랩코리아는 어떻게 성수동에서 시작됐나?
“비콥은 본사에서 지사를 내는 개념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지역에서 먼저 조직이 발생하고 글로벌과 함께 성장하는 체계에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 위치한 사회혁신 전문 컨설팅·임팩트 투자기관인 ‘미스크(MYSC)’가 2016년 비콥인증을 받으면서 비콥 커뮤니티에 합류했고 자연스럽게 국내 활동을 고민하게 됐어요.
비콥 홍보대사를 1년, 한국 마켓 빌더로 1년 활동을 하고 최종적으로 지난 2019년 ‘ 비랩코리아'(B Lab Korea)라는 이름의 공식법인으로 출범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에 이어 두번째로 비콥 법인이 설립된 거에요.”
-국내에서는 성수동에 기반을 둔 비콥 인증 기업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소셜벤처 집적지인 덕에 더욱 더 많이 관심을 가져주더라고요. 국내 15개 인증기업 중 미스크(MYSC), 섹슈얼 헬스케어 업체 ‘인스팅터스(Instinctus)', 소셜벤처 엑셀러레이터 ‘임팩트스퀘어(Impact Square)' 등은 성수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기업들이죠.
비콥 기업과의 커뮤니티 구축이나 안내 행사를 열기에도 성수동은 최적의 장소에요. 비콥이 추구하는 가치가 성수동의 소셜벤처와 같은 방향성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탐구하려는 사람들의 강한 도전의식은 혁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비콥 인증에 필수 조건이죠.”
-올해 비랩 코리아의 계획은 무엇인가?
“외국에서 온 제도이기 때문에 비콥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인데요, 올해는 비콥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비콥 인증 기업과의 커뮤니티를 견고히 구축하는데 힘을 쏟고자 합니다.
특히 비콥에 관심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원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에요. 인증 평가 과정 상 영어가 기본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을 위해 실질적인 인증 과정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Way to B (비콥이 되는 길)라는 이름으로 워크숍을 분기별로 1회 계획하고 있어요. 올해 3월에는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교육을 취소하고 온라인 워크숍으로 진행했습니다.
비콥 기업 간 커뮤니티 육성을 위해 결속력을 다지는 구체적인 활동도 준비 중이에요. 올해 1월에 론칭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성과관리 플랫폼, SDG Action Manager를 통해 국내 기업들도 SDG에 대한 참여를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성과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