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52년만에 사실상 계엄령 발동...5일 0시부터 복면금지법 시행

2019-10-04 17:18
불법 집회뿐 아니라 모든 시위에서 복면 착용 금지
홍콩 자금 '엑소더스'...싱가포르로 40억 달러 유출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과격 불법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기 위해 52년 만에 처음으로 ‘긴급법’을 발동, 그 중 첫 번째로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5일 0시(현지시간)부터 복면금지법 시행이 예고된 가운데, 시위대와 경찰 간 갈등이 극대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이날 오전 내각인 행정위원들이 참석하는 특별행정회의를 주재해 긴급법에 따른 복면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행정회의 통과 후 국회의 동의 없이 곧바로 시행된다.

복면금지법에 따르면 경찰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에게 마스크를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에 불응하는 자에겐 최고 1년의 징역을 선고하거나 최고 2만5000홍콩달러(약 381만 75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복면금지법은 람 장관이 '긴급정황규례조례’, 이른바 긴급법을 발동하면서 가능해졌다. 긴급법은 영국 식민통치 시절인 1922년, 홍콩 항구에서 선원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처음 제정된 법이다. 애초 총독에게 발동권을 부여했다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행정장관에게 부여됐다. 긴급법이 발동된 건 1967년 노동자 파업사태 이후 52년만에 처음이다.

람 장관은 복면금지법 뿐만 아니라, 최대 4일까지 구속기한을 연장하는 내용과 무기 소지만으로 체포가 가능한 내용 등을 담은 긴급법도 통과시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홍콩 당국의 체포와 수색, 간행물 검열, 통신 통제, 시위 불허가 더 쉬워질 전망이다. 사실상 '계엄령'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3일(현지시간) 홍콩의 타이쿠 역 주변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도중 한 시위대가 경찰관과 얼굴을 맞댄 채 정면 대치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긴급법 발동을 두고 시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역효과를 낳아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위치와이 홍콩 민주당 대표는 "긴급법을 발동해서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시위대를 화나게 해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중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도 "긴급법 발동은 '멸망 직전'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오히려 시위대 간 갈등을 부추겨 법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긴급법 발동으로 홍콩 경제가 더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이날 홍콩 증시는 정부의 긴급법 발동으로 시위가 격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투자 심리 악화로 하락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89.280포인트(1.11%) 내린 2만5821.030로 거래가 끝났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금이 홍콩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 6월 이래 시위 사태가 발발한 이후 홍콩에서 6~8월 최대 40억 달러(약 4조790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는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시위 초기부터 투자가들과 기업 경영자들이 자금을 싱가포르를 포함해 해외로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 금융권을 통해 전해졌지만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된 건 처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긴급법 발동으로 경찰과 시위대 간 갈등이 극대화되면 대규모 자금 유출이 이어져 경제적인 타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다. 

한편, 홍콩 입법회(국회)는 16일 새로운 회기를 시작하기로 했으며 이날 행정부 주요 인사가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의 공식 철회를 선언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송환법 철회를 발표한 데 따른 조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