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기주, 모든걸 다 가졌다고요? "수많은 실패, 불안, 고통 겪어 여기까지 왔죠"
2018-07-27 16:11
"대기업, 기자, 모델, 배우까지 남들은 한 가지도 어려운 직업을 모두 거쳤다며 실패를 모르는 인생이라고 하셨지만 그속에서 제가 느낀 좌절, 불안, 고통을 꿰뚫어봐 주시고 낙원이라는 캐릭터를 주셨어요. 낙원이를 통해 제 배우 인생 2막이 시작됐습니다".
배우 진기주(30)는 배우가 되기 전 여러 직업을 거쳤다. 중앙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SDS에 입사했다가 기자가 되고 싶어 다시 강원지역 민영 방송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부딪혔던 기자는 그녀의 생각과 달랐고 어릴 때 꿈이었던 연기자가 되기 위해 수퍼모델 선발대회에 출전, 입상 후 26세에 배우로 데뷔했다.
tvN 드라마 '두 번째 스무살'로 신고식을 치른 진기주는 이후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 등에서 기본기를 닦았다. 진기주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미스티’와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주연 자리를 꿰차면서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데뷔 3년째에 지상파 미니시리즈 주연까지 성공적으로 해냈으니 가히 배우로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진기주는 최근 처음으로 지상파 드라마 주연을 맡았다. 첫 주연인 만큼 부담감도 컸지만 월화드라마 1위로 드라마를 마쳤다. 연쇄살인범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잔잔하지만 치유가 되도록 풀어낸 ‘이리와 안아줘’는 힐링 드라마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리와 안아줘’는 지난 20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이리와 안아줘’ 31-32회는 수도권 기준 5.6%-6.5%로 시청률이 상승, 마지막까지 지상파 동시간대 1위를 유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사실 주변의 걱정도 알고 있었고 그 걱정을 객관적으로 저 역시 하고 있었어요. "'버리는 카드'라는 얘기가 들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작품에 처음 들어갈 때 주변에서 많이 축하해주셨지만 저는 또 마음이 편하지 않더라구요. '사람들이 이 방송을 봐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처음에 오디션을 볼 때에도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걱정은 됐었어요. 그런데 제가 하기로 결정이 나고 감독님을 만났을 때 감독님이 저한테 '나도 처음이고 작가님도 처음이고 너도 처음이니 같은 처지다.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으로 하자'고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서 재밌었고 행복했어요"라고 밝혔다.
진기주는 "“대부분 저를 ‘하고 싶은 거 다 이루고 했던 사람’으로 보고 계시더라구요. 하지만 합격 전에 수많은 불합격과 좌절과 고민과 고통, 번뇌의 시간이 있었어요. 합격해도 제가 바라는 게 아니였기에 회의감과 자괴감이 있었는데 최준배 PD님이 그걸 알아주셨어요. 제 캐스팅에 어떤 분이 ‘걔는 성공만 해서 낙원이 캐릭터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자 PD님이 ‘진기주가 왜 성공만 했다는 거냐. 그 많은 선택지들을 돌아서 왔다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를 겪은 것이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오히려 힘든 감정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말을 듣자 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제 이면을 알아봐주다니 감동이었죠. 감독님을 믿고 갈 수 있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고 밝혔다.
또 탄탄한 대본 덕도 봤다.
"처음에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낙원이가 끝까지 잘 유지된 것 같아요. 그건 캐릭터를 잘 그려주신 작가님 덕분이죠. 그 아이의 성격을 제대로 묘사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잘 그려주신 작가님을 저는 따라가기만 했을 뿐이에요. '이리와 안아줘'에서의 제 기여도는 3등 정도에요. 작가님이 1등이시고, 2등이 감독님과 배우분들. 그리고 마지막이 저랄까요?"
극중 상대역이었던 장기용과의 호흡도 좋았다고.
"기용씨는 열린 마인드가 있어요. 둘다 주연이 처음이고 하다보니 느끼는 부분도 비슷하고 고민하는 부분도 비슷해서 정말 의지가 많이 됐어요. 서로 열심히 익숙해져보자 하면서, 으샤으샤 하면서 했어요. 그래서 뭔가 더 풋풋한 느낌도 났던 것 같아요. 둘 다 어느 정도 캐릭터에 몰입이 됐을 땐 애틋한 느낌도 난 것 같아요. 작업할 때 '내 생각은 이렇다'고 주장만 하는 분들 보다는 얘기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고 했던 좋은 배우였죠".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이리와 안아줘'는 진기주가 연기 인생을 지속하며 평생 기억할 인생 작품이 됐다. 길낙원 역시 작품 시작 전부터 눈에 밝히던 배역이자, 작품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날 인생 캐릭터가 됐다.
진기주는 "낙원이는 제가 닮고 싶은 이상형이에요. 어린 시절 일반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자신을 지탱하고 주변까지 밝고 행복하게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제가 되고 싶고 닮고 싶은 그런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낙원이에게 공감할 수 있었고 낙원이가 되기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행복했습니다"고 설명했다.
이제 진기주는 다음이 기대되는 배우가 됐다. 진기주는 스스로 그런 칭찬이 과분할 정도로 감사하다고 밝힌다.
"제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인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인 것은 제가 낙원이를 정말 좋아했다는 점이에요. 이 친구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표현할 수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많았는데 제가 잘 해냈다고 평가해주신다는건 진짜 제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요. 낙원이는 뭐하나 나무랄데가 없는 캐릭터였어요. 어린시절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이 크고 단단해서 주변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줄 수 있고 낙원이가 나무에게 베풀수있었던 것도 사랑을 듬뿍 받은 친구는 뭘 해도 이겨낼 수 있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기특한 친구죠. 그런 사람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와 낙원이와 비슷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현실에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점들이요".
인생 캐릭터를 만나 제 2의 배우 인생을 열게 된 진기주. 앞으로 그녀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을까.
"기회가 오는걸 무엇이든 다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어요. 장르도 멜로에 대한 매력을 느껴서 멜로도 한번 더 해보고 싶고 어두운 장르물이라든지 로코라든지 다 해보고 싶어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냐구요? 선택하는 기준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로운 드라마하네, 진기주가 나오네 하는 궁금증을 줄 수 있는 배우? 저를 보는 것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낙원이를 떠나보내며 진기주는 "그렇게 갖고 싶었던 편안함을 갖게되어 12년동안 고생많았다고 위로도 해주고싶고 본받고 싶은 이상형의 사람이라 늘 마음속에 간직하겠다고 말해주고싶어요. 힘들 때마다 간직하고 생각하면서 저도 낙원이처럼 씩씩하게 저에게 주어진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다부지게 밝혔다.
진기주가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녀는 "저도 궁금해요. 제가 뭐라고 저를 왜 좋아해주시는 걸까요?"라고 반문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어 "초반에 작품을 할 때 감독님들이 끝까지 지금처럼 순수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오디션을 볼 때 이런저런 공통적으로 해주시는말씀이 기분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구요. 그게 나의 좋은점이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면밖으로도 그런 좋은 에너지가 나타난다면 편안하게 보기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덧붙였다.
진기주는 평소에는 여배우라는 자각을 거의 못하고 돌아다닌다는 편이다. '어차피 촬영장가면 갈아입을텐데 뭐하려 갖춰입고 가?'라면서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촬영장에 향한다. 가족들과 장을 보러 다닐 때도 제작발표회만 끝나도 하이힐에서 내려와(?) 슬리퍼 차림이 된다.
"소속사에서도 늘 혼나요. 저같은 여배우가 없데요. 트레이닝복입고 다니는 여자 연예인이 거의 없다고 하더라구요. 평소에 엄마 장보러 갈 때 따라가고 그러면 뜨끔할때가 있긴 해요. 지금 내꼴을 보고 뭐라실까하면서. 늘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이라서요. 푸트코트같은데서 시선이 막 오는데 저는 배고파서 신경쓰지 않고 먹었는데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들이 나오면 뒤늦게 후회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데요".
여러 직업을 돌아 배우에 도달한 진기주. 어느날 갑자기 다른 직업에 꽂혀 배우를 그만두겠다고 나서는 일은 없을까?
"어릴때부터 배우를 동경해왔기 때문에 아마 마지막 직업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 하고싶은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직장다닐 땐 늘 기자가 하고싶었는데 기자를 하다가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배우를 하고 싶었고 늘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지만 이제 더 이상 하고싶은게 없어요. 앞으로는 하고싶은 것이 있으면 그 역할을 맡으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