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생활화학제품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
2017-03-12 13:46
이정섭 환경부 차관
환경부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위해우려제품을 전수 조사한 결과 1만8340개 제품에서 733종의 살생물질(Biocide)을 확인했다. 이 중 스프레이형 방향제, 탈취제 등에 함유된 살생물질은 439종에 달했다.
하지만 호흡 독성 등 위해성평가가 확인된 살생물질은 55종에 불과했다. 국내외에서 독성 자료가 확인된 살생물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살생물질은 미생물, 해충 등을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효과를 가진 물질을 말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물질은 사람에게도 해를 끼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살생물제관리법(BPR), 미국에서는 연방살충제법(FIFRA)에 따라 농약과 같은 수준으로 엄격히 관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제품 제조과정에서 살생물질이 사용됐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겪으며 살생물제 등 위해우려제품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산업부가 관리하고 있던 세정제 등 8가지 종류의 생활화학제품을 ‘위해우려제품 지정 및 안전·표시기준’ 시행과 함께 2015년 4월에 이관을 받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생활화학제품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 안전관리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되면 모든 기업들은 살생물질의 유해성 정보를 확보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고, 생활화학제품은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살생물제와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안전관리 체계가 강화되는 것이다.
제품에 들어가는 수많은 살생물질의 독성정보를 확보하고 위해성을 평가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살생물제와 생활화학제품 사용에 대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기업,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과 비용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1982년 당시 미국 존슨앤존스의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은 위기극복의 유명한 사례다. 위기에 맞선 기업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된다. 존슨앤존스는 사건 이후 미국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업들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이러한 의미에서 올해 2월 환경부와 17개 기업은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기간 동안 기업들은 제품에 함유된 모든 성분을 공개하고 제품성분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등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강화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 안전관리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제품안전 관리지침을 자율적으로 이행하는 데 힘쓰게 된다. 소비자 피해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통한 피해 가능성과 사례 조사를 비롯해 회수보상 조치를 위해서도 노력한다.
이렇게 기업들이 취하게 될 협약사항에 대해서 정부도 정책적으로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생활화학제품은 말 그대로 생활과 가장 밀접한 화학제품들이다. 소비자가 제품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의 의무라 할 수 있다.
제품 안전과 관련된 조치 사항들이 비단 협약식에 참석한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화학제품 생산·수입·유통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멀어진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경쟁력 확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며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