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상징의 폭력, 상징의 희망

2017-03-06 00:01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의 주말 집회 진단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지난 주말에도 어김없이 태극기와 촛불이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 태극기를 자신의 상징물로 선택한 이들은 700만이 모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으며 촛불집회도 7시 30분을 기준으로 100만이 넘었다고 하니, 이 두 개의 상징 아래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개의 상징 아래서 쏟아진 구체적 언술들은 무척이나 그 성격이 달랐다. 태극기라는 상징 아래에서 사람들은 탄핵 기각과 더불어 박멸, 척결, 전쟁, 피와 같은 폭력적인 단어들을 쏟아내었다.

대통령 변호인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헌법재판소가 3 대 5로 됐다는 허위 사실을 쏟아내면서 청중을 자극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접수하면 안 되는 탄핵소추안을 접수해 놓고 두 달 동안 형사재판 증인으로 불러다가 박 대통령을 유죄 받게 했다는 둥 사실관계를 마구 왜곡했다.

게다가 “전쟁을 시작해”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쫓아가서 완전히 섬멸”시켜야 한다며 사실상 내란을 선동했다. 이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도 상징으로 활용했고 십자가를 목에 걸거나 “I Love Jesus"와 같은 문구를 팔에 두르고 나와 예수를 의미하는 상징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구를 팔에 두르고 단상에 오른 자칭 언론인이라 주장하는 정치 선동가는 새벽에 샤워를 하고 고소장을 쓸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낀다고 하던 사람이었다. 상징과 현상이 충돌을 일으키다 못해 코미디가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태극기나 십자가나 촛불은 기독교와는 떼레야 뗄 수 없는 상징들이다. 3.1 만세운동을 사실상 주도한 사람들이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이었고, 실행의 주체는 기독교 학교에서 역사와 주체성을 바르게 공부한 10대 여성들이었다.

특히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다짐한 유관순과 같은 10대 여성들은 학교에 있을 때엔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만들어 공급했고 학교의 문이 강제로 닫히면 고향으로 가서 십자가를 붙들고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그들이 죽음의 위협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때문이었고, 그들이 현실 권력과 맞서서 싸울 무기는 태극기였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이 땅에 한줄기 빛을 던지는 촛불과도 같은 선택임을 잘 알고 있었다. 촛불 아래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그리던 그들은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촛불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또다른 촛불들에게 불을 나눠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스스로 촛불이 되었고 그 순간까지 품에 안고 있던 태극기와 십자가는 그들이 숭고한 신의 선택을 했음을 입증해 주는 상징이었다.

상징은 의지와 결속, 비전이 되기도 하지만, 폭력이나 가식이 되기도 한다. 촛불로 모인 사람들은 자본의 폭력, 국가시스템의 횡포 아래 피눈물을 흘린 약자들과 함께 울며 강자의 불법을 규탄했고, 비가 뿌리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촛농 하나까지 긁어 치우며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실천하려 했다.

하지만 태극기는 집회 이후에 고스란히 버려지고 짓밟히다가 찢겨 쓰레기가 되어 나뒹굴었다. I LOVE JESUS란 완장 역시 쓰레기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함께 나뒹구는 같은 신세였다. 이렇게 함부로 다뤄질 상징이 과연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태극기나 국기봉으로 누군가를 구타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집회 중엔 자신들이 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국가 상징으로 폭력을 자행했고, 집회 후에는 국가상징을 능멸함으로 다시 한 번 국민들을 공격했다. 버려지고 찢겨진 태극기와 더럽혀지고 짓밟히는 예수사랑 완장들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었다.

탄핵이 인용되든 인용되지 않던, 국민들은 이 장면을 통해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누가 상징으로 폭력을 자행했고, 누가 상징을 소중히 지켜내려고 했는지. 스스로 소중하다고 생각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이해에 따라서 쓰고 버리는 것이 상징이라면, 그 상징들이 오히려 그들의 숨통을 죄게 것이다. 예수를 죽인 자들을 가리키는 상징이 산헤드린의 육각별이 되었고, 인류 대학살의 상징이 하켄크로이츠가 된 것처럼.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