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속옷, 불편한 아름다움 대신 내 몸과 편안함을 위한 선택
2017-05-12 08:49
속옷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서 기절하거나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상황은 요즘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허리를 꽉 졸라매던 ‘코르셋’을 입던 시대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스칼릿 오하라다. 그녀는 허리를 1인치라도 더 졸라매기 위해 하인의 도움까지 받으며 코르셋 안에 몸을 집어넣는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기울어가는 집안을 결혼을 통해 일으켜 세우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여주인공 로즈는 코르셋을 한껏 더 조여 맨다. 갑갑한 코르셋을 입으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했던 그녀의 대사처럼, 코르셋은 최신 유행을 위한 아이템이었지만 실은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이기도 했다.
코르셋이 가장 유행했던 시기는 역시 중세에 해당하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였다. 허리를 조이며 치마를 부풀리는 스타일이 크게 유행하면서, 코르셋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메디시스 왕녀는 귀부인들에게 “허리둘레를 33㎝가 넘지 않도록 하라”고 공표했을 정도인데, 33㎝는 요즘으로 치면 무려 허리둘레 13인치에 해당한다. 좀 더 강한 압박갑을 위해 철이나 단단한 고래뼈 등으로 코르셋을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갈비뼈가 폐나 심장을 압박해 사망했다는 일화도 있다.
가슴의 볼륨감을 더해주는 패드도 처음에는 불편한 점이 있었다. 1999년 말에 등장한 워터패드는 볼륨감을 위해 안에 식물성 글리세린이나 오일을 사용했다. 이 패드는 액체를 사용해 유동성이 좋고 가슴에 밀착되는 부드러운 착용감을 주었지만, 대신에 무게가 47g 정도로 무거웠기 때문에 착용하는 동안 불편함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성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더 예쁘고 가늘어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여성들이 이제는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굳어진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얽매이던 과거 여성들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내 몸을 획일화된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나'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내 모습에 긍정하자는 이른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과한 볼륨감을 강조한 속옷보다는 편안한 착용감을 주는 속옷을 선택하려는 여성들은 아예 와이어가 없는 노와이어 스타일의 브래지어를 입기도 한다. 속옷의 압박감이 버거운 중년 여성들을 위한 노와이어 브래지어는 젊은 여성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색상과 디자인이 세련되고 자칫 펑퍼짐해 보일 수 있는 가슴의 모양도 확실하게 잡아주는 등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불편한 아름다움 대신 내 몸과 편안함을 선택한 여성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여성들의 지위와 권리가 성장하면서 그만큼 자의식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들이 원하는 ‘편안함’을 제공하기 위해 속옷도 원단이나 부자재의 기능을 추가하며 한층 발전하고 있다. 몸을 구속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체형과 핏을 살려주면서도 편안하게 감싸주는 속옷이 늘 앞서가는 여성들과 그 걸음을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