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반려동물과 반려식물
2017-03-15 13:37
나무에게서 삶의 자세 배우고 자연과 상생
반려동물과 삶을 함께하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면 데면데면하던 가족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깃거리가 늘어난다. 반려동물과 같이 산책하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나 속 깊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그야말로 ‘애완’에서 삶의 단짝이 되는 동무인 ‘반려’가 된다.
‘반려’는 동물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요즘은 식물까지 그 영역을 넓혀 ‘반려식물’을 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내장식과 공기정화를 목적으로 식물을 키우다가 지금은 삶을 공유하고자 식물을 찾고 있는 것이다.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반려나무 들이기에 딱 좋은 때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딸을 시집보낼 때 장롱 만들 소재로 심었다고 하지만, 오동나무가 20년 지났다고 해서 장롱을 만들 재목이 되지는 못한다. 사실은 봉황이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기에 집에 봉황이 깃들라는 바람을 담아 집안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자귀나무는 아카시나무처럼 좌우 잎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낮에는 잎을 열어 햇빛을 모으다가, 저녁에는 두 잎을 맞대 증산을 막는다. 이를 보고 부부가 밤에 서로 합쳐 잠을 자는 것을 떠올려 합화수(合和樹),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 유정수(有情樹)라고 부르며 부부간의 금실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마당 한 켠에 심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농촌진흥청 들머리인 우장춘길 양옆에는 회화나무가 줄지어 있다. 3년 전 수원에서 전주 혁신도시로 이전해오면서 뿌리내린 이 나무는 연구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넌지시 알려준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집안에 나무를 즐겨 심었던 우리 조상들이지만,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어 집안에 심지 않았던 나무도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대추나무와 감나무이지만, 부잣집에서는 게으른 나무가 있으면 하인도 게을러진다고 해서 집안에 심지 않았다. 실제로 대추나무와 감나무는 늦게까지 겨울잠을 자다가 봄이 다 지나갈 무렵인 4월 말이 되어서야 싹을 삐쭉 내민다.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죽은 조상의 혼이 집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하여 울타리 안에 심지 않았고, 은행나무의 행 자(杏)가 입에다 나무를 심는 꼴로 입안이 바짝 마르면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해서 집안에 은행나무를 심지 않았다.
배롱나무는 매끄러운 나무줄기가 여자의 나신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양반집 담장안에서는 금기였고, 제주도에서는 줄기가 사람의 뼈를 연상키시고, 붉은 꽃은 피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집안에 심지 않았다.
겨울과 초봄 사이에 꽃피는 동백나무는 꽃송이가 한 번에 뚝 떨어지는 것이 역모죄로 목이 떨어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선비들이 싫어했다. 나무가 크게 자라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도 집에 심지 않았다. 큰 뿌리가 집을 들어 올릴까 걱정했고, 넓게 퍼진 가지가 집안을 그늘지게 한다고 해서 피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나무 한 그루를 심거나 피하면서도 이야기를 담았다. 심을 때는 좋은 뜻을 담고, 심지 말라고 할 때는 나쁜 이유를 만들어서 갖다 댔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수백 년의 세월을 이고 진 나무를 보면 시선이 따뜻해지며 겸허한 삶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누워 자라는 나무에게선 지형의 불리함을 감내하는 인내를, 반으로 쪼개지고도 살아남은 나무에게선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면 가족과 나눌 이야깃거리가 늘고 공유하는 시간도 많아진다고 했다. 반려동물처럼 나와 삶을 함께하는 반려나무를 한 그루 심어보면 어떨까. 나보다 오랜 삶을 유지할 나무로부터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자연과 상생하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양한 나무로부터 배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뿌리가 깊어지는 반려나무는 평생 곁에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 될 것이다.
[성제훈 농촌진흥청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