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에 방점찍은 구본무 LG 회장의 ‘믿음 경영’
2016-12-01 15:58
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유진희 기자 = “‘믿음’을 앞세우면서 ‘책임’에 방점을 찍었다.”
1일 발표한 LG그룹 계열사별 2017년도 임원인사를 접한 재계 관계자들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재확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연말 재계 분위기가 흉흉한 가운데 4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임원인사를 단행한 LG그룹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은 파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사실상 모두 유임시킨 가운데, 의미 있는 실적을 낸 계열사 및 사업부는 승진이라는 ‘상’을 주고, 부진한 곳은 ‘벌’을 최소화 했다. 한계에 달할 만큼 노력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기에 믿고 내년에도 같이 가겠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한 혁신···‘책임’ 커진 구본준 부회장
구본무 회장은 현재의 LG그룹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내부 결속력과 추진력, 이를 통해 ‘1등 LG’ 구현을 위한 ‘강한 LG’를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구본무 회장은 미래를 위한 혁신을 담당할 대상으로 동생 구본준 부회장을 선택했다.
구본무 회장이 지주회사 ㈜LG의 대표이사 및 이사회 의장으로서 중요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및 최고경영진 인사 등 LG 회장으로서 큰 틀에서의 의사결정 및 주요 경영사안을 챙기고, 실질적인 전면 경영은 구본준 부회장이 담당하는 것이다. 2인자로서의 권한이 강화된 만큼, 구본준 부회장으로선 책임감도 막중해졌다.
LG측은 “자동차부품과 에너지솔루션 등 신성장사업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사업전개와 효율적인 성과창출을 위해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상사 등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던 구 부회장의 경험과 추진력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구본무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성장사업추진단은 현재 LG그룹의 미래 전략 사업인 자동차부품과 전기차 배터리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신사업은 시작 단계에서 강하게 밀어붙여 단기간에 궤도에 안착시켜야 한다. 다만,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분야인 만큼 외부 못지않게 내부 계열사 및 임직원들간 업무 조율 및 협업이 필요하다. 구본준 부회장이 경영회의체를 주관함에 따라 계열사간 업무 조율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G그룹 구성원 개개인이 자신의 내재된 잠재력을 부정하고 스스로 한계를 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구본준 부회장이 어떠한 위기관리 경영을 펼칠지도 관심가는 대목이다. 그동안의 발언을 통해 구본준 부회장은 한계 돌파의 해법을 내부 혁신에서 찾을 것으로 보인다. ‘강한 LG’를 표방하는 구본준 부회장은 당장 그룹내 곳곳에 배어 있는 패배주의를 털어내기 위한 조직 혁신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믿음’의 인사, 조성진 부회장 승진
인사 발표 전까지 LG그룹은 경영 부진에 따른 문책인사가 점쳐졌다. 뚜껑을 열어보니 LG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 모두 CEO들이 유임됐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 3인 대표체제에서 1인 CEO 체제로 전환했다. 고졸 출신으로 40년간 ‘가전 신화’를 일궈온 조성진 사장(H&A사업본부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해 CEO를 맡는다. LG그룹에서는 역대 최초로 고졸 출신 부회장이 탄생했다.
LG전자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위기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한 추진력 발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76년 입사한 조 CEO는 세탁기 분야 1등 DNA를 다른 가전 사업에 성공적으로 이식해 올해 역대 최대 성과를 창출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았다.
조준호 MC사업본부장, 이우종 VC사업본부장, 권봉석 HE사업본부장, 최상규 한국영업본부장은 유임됐다. 이로써 LG전자는 부회장 승진 1명, 사장 승진 1명, 부사장 승진 5명, 전무 승진 13명, 상무 승진 38명 등 총 58명 규모의 승진 인사를 했다. 승진 규모는 지난해(38명)를 크게 웃돈다. LG전자는 2005년(60명) 이후 최대 규모 승진 인사를 통해 젊고 유연한 조직으로의 변화를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 경영진의 유임으로 LG그룹의 인사가 ‘안정’을 택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최고 경영진의 교체로 인해 그동안 각 사별로 추진해 온 내부 혁신 작업이 중단 또는 혼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최고 경영진들이 더 강력히 혁신을 밀어붙이라는 구본무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보는게 맞다는 설명이다. 또한 2~3년이라는 짧은 임기에 성과를 내야하는 조급감에 자칫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전문경영인들의 사정을 고려해 긴 안목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게끔 배려했다는 것이다.
LG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최고 경영진의 혁신 의지를 바탕으로 젊은 인재들을 대거 발탁해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 위기 돌파 및 지속성장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