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뉴 삼성’④]연간 1500종 TV 개발···‘경험 못한 품질’ 극복 과제
2016-10-24 16:10
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류태웅 기자 = "혁신제품에는 그에 걸맞는 품질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갤럭시 노트7의 혁신성을 놓고 볼 때 삼성은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
전자업계 전문가들은 갤럭시 노트7 사태가 그동안 수면 아래에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새로운 품질관리 시대의 도래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태로 지난 20여년간 최고로 인정받아왔던 ‘품질관리’ 능력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일각에선 '혁신 조급증' 때문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갤럭시 노트7 등 최근 출시된 스마트폰들은 과거 10여년 전 전산실의 큰 공간을 차지했던 대형 컴퓨터를 손바닥만 한 크기에 집어넣을 만큼 고도화 된 제품이다. 이런 제품들은 설계나 생산 등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개념에서 탄생한다. 때문에 품질관리의 방법이 그만큼 개선돼야 하고 그 한계를 삼성전자가 업계에서 가장 먼저 맞이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추구해온 제품 전략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는 1년에 1000~1500여 종의 TV 신모델을 생산해 시장에 투입한다. 휴대폰도 동종업계에서 매년 가장 많은 신모델을 선보인다. 매년 두 자리 수가 채 안 되는 신제품을 출시하는 일본 전자업체나 미국 애플과 전혀 다른 전략이다.
요시카와 료조 일본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 특임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일본 기업이 중시해 온 기초 연구나 생산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대신 소비자가 원하는 성능의 제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에 얼마나 빨리 개발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자사 또는 경쟁사의 선행제품을 그대로 복사해 디자인만 바꾸는 게 아니다. 제품을 기능 단위로 분해해 그 기능이 왜 적용됐는지, 해당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같은 구조(메커니즘)를 갖췄는지 등을 분석한 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새로운 기능을 붙이거나(기능 추가)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기능 삭제)해 파생 모델을 만든다.
예를 들어 일본의 입식소바는 동일한 메밀국수와 국물에 고객의 주문에 따라 튀김이나 고기를 넣는다. 리버스 엔지니어링도 입식소바와 같다. 공통된 플랫폼에 시장의 특성에 따라 기능을 갖춘 제품을 빠르고 저렴한 가격에 개발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이용하면 기존 기술을 결합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부품도 자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범용 부품을 조합해 단기간 저비용으로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추구한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력이 치열한 ‘로우 엔드 시장’은 물론 고가 프리미엄 제품이 격돌하는 ‘하이엔드 시장’까지 모두 대응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글로벌 톱의 지위에 올랐다”고 덧붙였다.
특히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완벽한 품질관리와 제조공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세계화와 디지털화하는 변화 속에 일본의 흉내만 계속 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한 위기감에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신경영)’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인재육성(개인혁신) △제품개발(제품 혁신) △개발·생산공정(프로세스 혁신) 등 3가지 혁신(3PI)을 주문했다. 3PI 운동은 1997년말 IMF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했고, 삼성전자를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가운데 가장 이상적인 제품 개발 및 품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그동안의 경험과 기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갤럭시 노트7 사태를 단기간 내에 극복할 수는 방안을 찾아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