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뉴 삼성’③]‘상명하달 문화’의 폐단? “삼성은 이상적인 ‘하의상달’ 문화”

2016-10-23 15:28

삼성그룹 사장단들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하의상달식’ 빠른 의사결정 체제를 구축한 삼성그룹은 이를 더욱 진화시키기 위한 소통 채널을 검토하고 있으며, 수요 사장단 회의도 그룹의 공통된 지향점을 공유하고 계열사 사장단간 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박선미·류태웅 기자 = “삼성을 둘러싼 오해 중 하나는 ‘강렬한 상명하달식 문화’라 의사결정이 빠르고 대담한 결단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즉각적인 결정을 위한 ‘철저한 하의상달식 문화’를 갖추고 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전자 상무로 컴퓨터지원설계·제조(CAD·CAM) 프로그램 개발을 주도하며 삼성의 ‘신경영 혁신’을 지원했던 요시카와 료조 일본 도쿄대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 특임연구원은 최근 갤럭시 노트7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는 삼성 기업문화 비판에 대해 이같이 반론을 제기했다.

요시카와 연구원은 “글로벌 경쟁은 ‘리그’가 아닌 ‘토너먼트’다. 리그에서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여러 차례 얻을 수 있지만 토너먼트는 우승후보라도 한 번 지면 끝이다. 토너먼트에서는 1위가 되어야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산업의 글로벌화가 심화되면서 우승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을 뛰어넘는 의사결정 속도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넘버 원’을 지향하는 삼성의 빠른 의사결정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구축한 독특한 ‘하의상달식’ 시스템을 통해 이뤄졌다. 통상, 기업의 의사소통 절차는 계획(Plan) → 실행(Do) → 검증(Check) → 실행(Action)이라는 ‘PDCA’ 사이클로 이뤄진다. 그런데 삼성은 이 회장이 주도해 이러한 틀을 깼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전략의 방향성만 제시하고,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추진방법과 실행계획 등의 절차는 철저히 사장단 및 실무진에 맡긴다. 실무진들은 이 회장의 뜻을 담아내고 그 방향을 더 확장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기획안에 담아 이 회장에게 ‘제안’한다. 이 제안이 생각과 일치하면 이 회장은 ‘신호’를 내는데, 신호는 ‘결정’이 아니라 ‘판단’이다. ‘판단’은 실무진들이 놓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요시카와 연구원은 “이 회장은 10년, 100년 후까지 응시하면서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되 구체적이고 세세한 것들은 말하지 않고,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직원들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토록 한 뒤 ‘좋다’ 또는 ‘이런 것을 고쳤으면 한다’고 제안을 판단한다”면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글로벌 시장에서 매 순간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 없다. 또한 사원들에게 감내할 수 없는 큰 역할을 담당하게 하면서도 최종 결정은 자신이나 최고경영진이 내리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책임은 이 회장 또는 최고 경영진이 지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이 직원들의 제안을 판단하는 동안 이미 삼성은 그 제안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CEO)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경쟁사들에 비해 일 처리 속도가 훨씬 빨리 이뤄진다.

이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모든 그룹 구성원들이 이해하기 위해 활용한 것이 사내 방송국이다. 삼성그룹은 사내 방송을 통해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30분 동안 이 회장의 생각과 그룹 계열사의 동향을 방송했다. 최고경영자에서 말단 사원까지 그룹의 정책과 정보가 동시에 공유된다. 

특히 이 회장이 주제하는 사장단 회의는 매번 녹화하고, 이를 불참한 계열사 사장들에게 전달된다. 녹취록이 아닌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이 회장의 눈빛 표정, 발언의 수위와 사장단들의 반응 모습 등 회의실 전체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회장은 자신이 제시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삼성그룹의 하의상달 문화는 직원들의 업무 독립성을 키우면서 상부로 들어오는 정보의 수집에도 큰 기여를 한다. 요시카와 연구원은 “일본 기업은 최고경영자(CEO) 스스로가 정보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정보의 수준도 평범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반면 이 회장은 ‘정보는 발신하는 사람들에게 모인다’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같다. 이 회장이 평소에 특정 주제에 방향을 제기하고 문제를 던지며, 팁을 내면 직원들이 유용한 정보를 제안한다. 수집된 정보는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에 큰 바탕이 된다. 이는 블로그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정보 공유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이 회장은 20년 전부터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갤럭시 노트7 사태를 빠르게 봉합한 것은 그동안 뿌리를 내린 삼성의 의사결정 체계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상명하달식 문화였다면 오히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결정이 늦어질 수 있어 문제를 키울 수 있었지만 삼성의 하의싱달 문화가 실패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스피드 경영’, ‘마하경영’ 등으로 대변되는 빠른 의사결정체제 덕분에 종업원 수 25만여 명의 삼성그룹은 관료화의 폐단을 막아낼 수 있었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향후 역점을 둬야 할 과제도 이러한 의사소통 체계를 더욱 발전시켜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지속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