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68]고려대학교 경영 맡은 목당

2016-07-27 17:27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68)
제4장 재계활동 - (63) 중앙학원 주무이사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장례는 국민장(國民葬)으로 결정되어 5일장으로 2월 24일에 거행되었다. 목당(牧堂) 이활(李活)은 미망인 아주(娥珠) 부인의 천거로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 재단이사회에서 주무이사(主務理事)로 선출되었다.

고려대학교를 설립하면서 인촌은 곧 주무이사를 맡아 왔으며 목당은 1950년 1월 15일, 이강현(李康賢) 이사의 타계로 그 자리를 물려받아 참여하고 있다가 주무이사가 된 것이다.

당시의 이사진용(理事陣容)은 김영주(金永柱)·김연수(金秊洙)·이활·소병비(蘇秉毘)·최두선(崔斗善)·유진오(兪鎭午)·김상만(金相万), 감사에는 김재수(金在洙)·조동식(趙東植)·윤재중(尹在重) 등으로 모두 인촌이 신임했던 주변 인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목당이 재단의 주무이사가 되었을 때는 재단법인 중앙학원(中央學院)은 법인체로 주무이사와 이사·감사로 구성되었으며, 실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사무국장 1명을 따로 두고 있었다. 이사의 임기가 5년이므로 5년 만에 한번씩 이사와 감사를 개선하여야 했다.

당초 인촌이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할 때에는 재단법인 보성 전문학교와 재단법인 중앙학원에서 경영하는 중앙중학교의 이원조직(二元組織)이었는데 해방 후인 1946년 5월 31일, 재단법인 보성전문학교를 해산하고 그 재산을 중앙학원에 흡수하여 이 해 8월 15일자로 중앙학원 주무이사 김성수 명의로 미군정청 문교부의 인가를 얻어 고려대학교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고려대학교는 중앙중학교와 함께 재단법인 중앙학원에서 경영하게 되었고, 인촌은 다시 농림대학(農林大學)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종암동과 안암동 일대의 땅을 사들이며 재단 기금을 확장하면서 목당도 이에 참여하여 1200석 지기 땅을 희사하였던 것임은 이미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사와 감사의 선임은 정관이 규정하기를, ① 이 학교법인(學校法人)에 다액(多額)의 기부자 및 그 자손 ② 이 학교법인이 경영하는 학교의 장 ③ 학식과 덕망이 있고 본 학교법인이 경영하는 기관에 공헌이 있는 자로 하고 있었다.

주무이사는 이사 가운데서 이사의 호선(互選, 특정한 사람이 모여 그 가운데에서 어떠한 사람을 골라 뽑는 방법)으로 선임하여 감독청(監督廳)의 인가를 받아 취임하면 법인을 대표하는 것이다.

이사회의 기능은 ① 법인의 예산·결산과 차입금(借入金) 및 재산의 취득, 처분과 관리에 관한 사항 ②학교경영에 관한 사항 ③ 수익사업(收益事業)에 관한 사항 ④ 임원의 임면(任免)에 관한 사항 ⑤ 학교의 장(長) 및 교원의 임면에 관한 사항 ⑥ 정관의 변경에 관한 사항 ⑦ 법인의 합병 또는 해산에 관한 사항으로서 학교 경영을 장악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학교의 장, 교원의 임면권을 행사하는 중책이 지워져 있었다. 그러므로 덕망이 있는 주무이사가 요구되었다.

목당은 주무이사로 취임하면서 고려대학교 중앙중학교 경영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이다.

주무이사가 할 일이란 이사회를 소집하는 일이며 이사회의 의장이 되는 일로서 그리 번잡한 직무는 아니었다. 목당은 재단 일을 보면서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수당(秀堂) 김연수(金秊洙)의 의견을 묻고 미망인 아주 부인의 의견도 듣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재단법인 중앙학원(財團法人 中央學院)은 1963년 6월 26일 제정 공포된 사립학교법(私立學校法)에 따라 1964년 4월 25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學校法人 高麗中央學院)으로 명칭을 바꾸는 동시에 정관 내용도 대폭 개정하였다. 중앙학원이 중앙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 및 고려대학교를 오랫동안 경영해 왔으나 중앙학원 정관(鄭款)의 명문상에 이러한 표시가 없었던 까닭에 이를 시정하여 명실상부한 3개 교의 경영재단임을 뚜렷이 나타내자는 데서 개정된 것이다.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임원도 재단법인 중앙학원의 임원들이 모두 연임되었는데 다만 감사 김재수의 타계로 감사 조동식이 이사가 되고 감사에는 새로운 김용완(金容完)이 선임되었으며 감사 윤재중이 사무국장으로 취임하는 등 변동이 있었을 뿐이었다.

목당은 그 뒤 타계할 때가지 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