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당 이활의 생애-61]야당세력으로 몰린 목당, 정부 압박에 사임

2016-07-25 11:51
아주경제신문-한국무역협회 공동기획 (61)
제3장 재계활동 - (56) 협회를 떠나다

목당 이활 한국무역협회 명예회장[일러스트=김효곤 기자 hyogoncap@]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목당(牧堂) 이활(李活)은 1953년 4월 25일에 개최된 제7회 정기총회에서 제4대 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5월 5일에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사임하기에 이른다.

1952년 8월 5일의 정·부통령 선거가 끝나자 원내자유당은 자연 해체상태가 되었고, 이승만(李承晩) 지지세력인 원외자유당(院外自由黨)과 야당으로서는 민주국민당이 남아 있었다.

다시 원외자유당은 자유당으로 단일화하여 이승만을 지지하고 정부 시책을 뒷받침하는 여당이 되었다. 즉 족청계(族靑係, 조선민족청년단계) 세력이 판을 치는 판국이 되었던 것이다.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이범석(李範奭)은 뜻밖에도 무소속으로 조직기반도 없는 함태영(咸台永)에게 패배하자 장택상(張澤相) 국무총리를 선거간섭으로 고발하는 사태에 이르러 일인(日人) 후로이치(古市進)의 내한(來韓) 사건까지 문제삼아 공격함으로써 장택상을 실직시키고 백두진(白斗鎭)이 국무총리에 올랐다.

이 무렵 재무부장관 백두진, 상공부장관 이재형(李載瀅), 농림부장관 임문항(任文恒) 등과 같이 경제부처는 말할 것 없고, 내각은 이범석계 인물들로 구성되었고, 이들은 족청계의 기반 구축을 서둘렀다. 특히 이들 경제장관들은 일제하의 고문(高文, 고등문관시험) 출신자들과 은행원 출신들로 기맥이 통하는 층의 인물들이었다.

원외자유당을 형성하고 나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면서 이범석은 이승만이 투표 이틀을 앞두고 무소속의 함태영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하는 바람에 그에게 일격을 당한 쓰디쓴 경험을 겪었으므로, 그가 조직강화를 서두른 것은 당연하였다. 그런데 그 화살이 재계에도 미쳐 온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임의단체(任意團體)인데다가 회원(會員)들과 정부간에 실질적인 어떤 이해관계가 없어 간섭의 여지가 없었으나 한국무역협회나 대한방직협회는 그렇지가 않았다. 한국무역협회는 외환배정(外換配定) 등 회원들에게 영향이 미치는 이해관계가 정부의 손에 달려 있었고, 대한방직협회 또한 원면배정권(原綿配定權)을 정부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상공부는 넌지시 회장을 자유당계 인물로 바꾸지 않는 한 협회에 대해서 협조적으로 나오기는 어렵다는 뜻을 비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반공식적(半公式的)으로 표명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회원 상사들 가운데는 협회가 야당계로 지목받아 정부의 협조를 얻지 못해 그 영향을 회원 상사들이 입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것이 총회를 앞두고 있는 3월의 일이다.

그런 가운데 제7회 정기총회가 4월 25일 부산 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열렸지만 회장엔 이활 그대로 변동이 없었고 부회장에 오정수(吳楨洙) 이외에 전택보(全澤珤)와 주요한(朱耀翰)이 새로 선임되고 전무이사에 나익진(羅翼鎭)이 유임되었다. 한편 대한방직협회에서는 이사장 김용완(金容完)이 일본에 여행중인 가운데 이승만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조선방직(朝鮮紡織)의 강일매(姜一邁)로 이사장이 바뀌고 있었다.

상공부는 이활 팀이 그대로 유임되자 무역협회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해 왔고, 나익진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 목당에게

“물러나지요. 저는 사표를 내겠습니다”하고 사임하고 말았다. 목당은 물러설 시점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동안도 목당은 오정수에게 사임의 뜻을 말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후임자를 찾아내도록 해요!”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또 다시 제4대 회장으로 선출되고 말았는데, 우물쭈물 눌러 앉아 있다가는 욕이 될 것 같아 목당은 즉시 부회장단인 오정수 전택보와 주요한을 협회로 불러 점심을 같이 하면서 사임을 통보했고 목당은 협회로 돌아오자 사표를 냈다.

이리하여 재선된 지 10일 만인 5월 5일 임시총회가 열리고 이활 회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임문항이 선출되어 제4대 회장직을 이었다.

신임 회장은 1952년 3월 농림부장관을 그만둔 관료 출신 인물이었다. 그는 장면(張勉) 국무총리의 천거로 신중목(愼重穆)에게 자리를 넘기고 물러앉으면서 흑연(黑鉛) 수출에 손을 대고 있었다.

임문항은 머리 회전이 빠른 업무가로 이중춘(李重春)을 전무이사로 하여 팀을 구성했다. 목당 팀의 퇴진과 함께 한국무역협회는 스타일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