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내 인생의 책'…활자 울타리를 넘어 삶을 바꾸다

2016-05-13 00:01
탐독 |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그는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 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탐독' 어수웅 지음 | 민음사 펴냄

'탐독'                                           [사진=민음사 제공]


종이책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전망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외 출판계가 "장사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과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각종 모바일 디바이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 발전하며 '읽기' 행위 자체가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러나 '탐독'의 저자이자 활자 중독자임을 자처하는 어수웅은 돌연 "당신을 바꾼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책의 의미와 위상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읽기'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는 뜻에서다. 

이 책은 저자가 만난 예술가, 학자 10명의 책과 삶을 조명한다. 김영하, 조너선 프랜즌, 정유정, 김중혁, 움베르토 에코, 김대우, 은희경, 송호근, 안은미, 문성희. '탐독'이라는 제목처럼 하나같이 책을 열중하며 즐겨읽은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들을 "활자의 울타리 밖에서 성취감을 확인하고 삶을 바꾼 사람들"이라고 지칭한다. 

"나는 책을 다 쓰고 나면 슬퍼져요. 완성의 기쁨이 아니라, 책을 쓰는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는 게 더 즐겁습니다. 내 소설의 서사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쪽이라기보다,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재해석하는 편이죠." (움베르토 에코, 본문 103쪽)

저자의 같은 질문에 인터뷰이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지만, 에코의 말처럼 '내 인생의 책'은 각자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며 인간 본연의 감정과 욕망을 어루만진다. 바로 이 점이 책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공감능력도 상실해 가는 오늘날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220쪽 | 1만4500원 

◆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마이클 센델 지음 | 안진환, 김선욱 옮김 | 와이즈베리 펴냄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사진=와이즈베리 제공]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마이클 센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이번엔 개인과 정치인, 그리고 국가가 되짚어봐야 할 가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를 통해 "우리의 정치는 이상을 향해 진보해 나가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개인의 권리와 경제적 부에 대한 담론이 정치의 중심에 놓이게 되면서 사람들은 지역, 종교, 학교 등 공동체속 도덕적 가치에 대해 말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는 것이다. 

책은 현대 공공생활에 대한 31편의 정치 평론을 담으며, '좋은 삶'과 '우리'라는 개념을 재조명한다. 센델은 이 논평들을 통해 미국 정치의 전통과 역사를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고 공공 영역의 시장화, 소수집단 우대정책, 대통령의 사적 비행에 대한 거짓말 등 도덕·정치적 문제들을 살펴본다. 또한 오늘날 권리 중심의 자유주의 철학의 이론적 토대와 자유주의의 다양한 이형들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 다원주의적·시민적 공화주의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한다.

"제대로 된 정치가 있어야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왜 정치와 도덕을 곱씹어야 하는지는 체감적으로 알고 있다.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센델의 서구 사례들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416쪽 | 1만6000원

◆ '그는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 노광준 지음 | 스틱(STICKPUB) 펴냄

'그는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                         [사진=스틱(STICKPUB) 제공]
 


11년 전,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과학계는 '황우석' 이름 석자로 충격에 빠졌고, 줄기세포·논문·연구비 등을 둘러싼 논란과 공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의 과학자입니다'의 저자이자 라디오PD인 노광준은 황우석 사건의 실체와 황 박사의 행보를 10여 년간 취재했다. 그는 황 박사 관련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해 기록했고, 다양한 속설 중 사실을 가려내며 마치 퍼즐을 맞추듯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책은 저자의 '집념'에 동감하는 시민 165명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탄생했다. 

책은 법정 취재, 연구현장 인터뷰, 국내외 전문자료 분석 등을 통해 국제 생명윤리 정치와 특허 경쟁 맥락속에 펼쳐진 줄기세포의 진실과 기술력의 실체를 밝히려 노력한다. 또한 죽은 개 복제와 매머드 복제 시도 등 황 박사의 근황 등도 소개한다.

줄기세포의 '줄'자도 몰랐다가 10여 년간 황 박사를 취재하게 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2014년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실험실로 들어가는 황 박사의 가슴팍엔 여전히 한글로 그의 이름이 새겨 있었으니까. 옳고 그름이나 호불호를 떠나 그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과학자다. 이제 사실에 기반을 둬 미래를 일굴 시간이다." 

이 책이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제보자'(감독 임순례)의 경우와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독자들의 판단이 궁금해진다.

616쪽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