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을 만나다] 시민과 연결된 뉴스만이 역사가 된다
2017-11-02 05:00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 곰과 함께
밀린 집안일, TV리모콘과의 손가락 씨름,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주말·휴일엔 '의외로' 할 일이 많아 피곤해지기 일쑤다. 그렇지만 책 한권만 슬렁슬렁 읽어도 다가오는 한 주가 달라질 수 있다. '주말, 책을 만나다'에서 그런 기분좋은 변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뉴스가 위로가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임경빈 지음 | 부키 펴냄
지난해 가을부터 올 봄까지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은 촛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에 못지않게 '핫'했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종합편성채널 JTBC다. 그곳에서 뉴스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현재 이 방송국의 주말 '뉴스룸' 메인작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 임경빈은 얼마 전까지 이 프로그램의 '팩트체크' 코너 메인작가로 일했다. 그 시간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뉴스룸의 성공 요인과 보도국 안에서 겪은 크고 작은 일들, 좌충우돌 뉴스 만들기 에피소드와 카메라 뒤에서 일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하루,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가슴에 새긴 세월호 참사 보도까지.
시사방송작가의 하루는 전쟁과 같다. 아침에 눈떠 새벽에 잠들 때까지 매순간 아이템을 찾고, 조간신문과 포털뉴스를 동시에 분석하고 페이스북·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실시간 체크한다. 24시간 돌아가는 두뇌에 몸도 마음도 늘 방전 상태. 매일 뉴스 프로그램 코너를 만들어야 하는데, 당일 오후가 되도록 아이템을 결정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야말로 피가 마르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다.
그가 생각하는 뉴스룸은 '시청자들이 응원 편지를 보내는 뉴스'이자 '예능 프로마냥 사랑받는 뉴스', '참 이상한 뉴스'다. 세월호 참사 보도로 쌓은 신뢰에 최순실 태블릿 PC 특종까지 더해져 국내에서 가장 공정한 뉴스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눈코 뜰 새 없는 뉴스 제작 현장에서 그가 가장 깊은 울림을 받았던 것은 세월호 참사 보도를 100일간 이어갔던 때다. 감정 이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안을 건조하게 보는 것이 보도의 기본자세이지만, 세월호 사건만큼은 도저히 건조한 시각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저자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스튜디오 뒤편에서 자주 울어야 했다. 시청자들은 괴로우면 TV를 끌 수 있었지만 뉴스를 전하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었다. 고통스러웠던 그 보도는 저자로 하여금 방송작가라는 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누구를 위해 보도하는가? 보도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고단한 업무, 낮은 임금, 불안정한 지위. 작가들은 이름도 없이 스튜디오 뒤편에서 뉴스를 만든다.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뉴스를 만든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화면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시민들의 얼굴. 그들이 광장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고 그걸 통해 무얼 얻고자 했는가. 자신이 만든 방송을 시민들과 함께 보던 그 순간의 감동은 더 치열하게 뉴스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됐다. "뉴스를 뉴스답게 만들어야 한다.". 시민과 연결된 뉴스만이 위로가 되고, 기억이 되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
304쪽 | 1만3000원
◆ '곰과 함께'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 정해영 옮김 | 민음사 펴냄
"부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오. 한때는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를 위해."
마거릿 애트우드를 비롯해 미국·영국·캐나다·이탈리아의 내로라하는 현대 작가 열 명이 '환경 위기와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소설을 썼다. '곰과 함께'라는 제목의 이 작품 서문에 세계적인 환경 저널리스트 빌 매키번은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글을 쓸 때의 문제는 진실이 웬만한 허구보다 더 황당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북극에서 빙하가 녹는 속도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요즘, '닥터 지바고'와는 정반대로 러시아에서는 37도를 웃도는 더위가 지속되고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에서는 프랑스와 독일보다 넓은 국토가 물에 잠겼다. 이렇듯 전 지구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열 명의 작가들은 지금껏 지구별이 휴먼 드라마의 배경이었다면, 이 드라마가 극적인 국면에 다다랐음을 예감한다. 이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다른 것들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 편의 단편 소설 중 네 편은 현재, 여섯 편은 미래가 배경이다. '화성 3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성스러운 장소'는 매년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으로 여행을 떠나던 친구들이 예전과 달라진 환경 앞에서 느끼는 불안과 안타까움을 실감 나게 그렸다.
또 트럼프 시대 미국을 예언한 '시녀 이야기'로 크게 주목받은 마거릿 애트우드는 '죽은 행성에서 발견된 타임캡슐'에서 그녀의 예언적 언어를 통해 가까운 미래의 황폐화된 지구를 섬뜩하게 묘사한다. 이 책의 제목은 "만일 인간과 동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곰의 편에 서겠다"고 말한 환경 운동가 존 뮤어의 말에서 따왔다. 이 책은 그 '때'가 바로 지금임을 일깨우고 있다.
익명의 창작 집단 '우밍'이 쓴 '아르체스툴라'도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은 미래에 닥칠 끔찍한 재앙을 그리면서도 재앙 이후 정화된 자연과 건강해진 공동체를 보여 줌으로써, 지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돼 있다는 진리가 희망을 낳을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현실'이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 열어놓은 다소 무거운 결말이다.
340쪽 |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