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 과일가게에서
2015-11-02 17:00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은행잎 노란 노을로 지는 저녁
헤어진 기억 따라 막걸리 집에 갔다
막걸리집 주인 여자의 젊은 한철
양은 막걸리 잔처럼 찌그러진
철 지난 이별 얘기를 듣다 또
나의 이별은 기억할 수 없이 취하고
취해서 나선 골목은 가을 가로등
밤 늦은 은행잎의 낙화에 발목이 잠겨
가슴마저 저려오기 전에
그래 저기 과일가게에서 홍시라도 사야지
빨갛게 익어 애인 같은 홍시를 사다
붉은 사과도 노란 귤도 모두
떠나는 원색의 행렬
이렇게 또 한철 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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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는 은행잎 낙엽들로 노랑물이 들고 있다. 살다보니 가을이었고, 더 살다보니 가을이 또 저물고 있다. 이 가을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별주라도 한 잔 할 생각으로 막걸리 집을 찾았다. 거기도 가을이다. 저물어 가는 주인 여자의 젊음도 양은 막걸리 잔처럼 찌그러진 가을이다. 그 여자의 한철 이별 얘기를 듣다 취해서 나선 거리는 은행잎들로 발목이 잠긴다. 가뭇없는 나의 이별을 기억하며 골목을 돌 때 본 과일가게. 그 앞에 진열된 과일들은 유난히 붉고 노랗다. 저물어 가는 가을 한철은 그렇게 아름다운 원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