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 정자 짓다
2017-05-08 15:00
김경래 시인(OK시골, 카카오스토리채널 ‘전원주택과 전원생활’ 운영)
바람 지나는 곳
물길 만나는 곳
하늘같이 높은 곳에
산빛 푸르른 날
그대 오는 길목 어디쯤서
허공에 높이 매단 꿈
그 언덕에 철쭉 필 때
“그래 그렇게 살았구나”
돗자리를 펴고 누워
뒤돌아본 꿈들은 모두
저리 흘러가는 조각구름
기쁘게 사람을 맞으려
그 사람 기다려 지은
언덕 위 정자였는데
보내고 잊으려는 곳
결국은 버리려고 지은 집
그래 버릴 때도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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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원주택을 지으려 터를 찾는 사람들은 경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짓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정자를 두고 주변의 산수를 즐겼다. 그래서 유서 깊은 마을을 찾아가 보면 집들은 안전한 들판 끝, 야산 아래에 있고 경치 좋은 언덕배기나 강변, 계곡 옆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있다. 봄 들어 그런 흉내를 내 본다. 바람이 지나고 강이 보이는 마당가에 정자를 짓고 화단을 가꾼다. 주변의 푸른 산빛이 참 좋다.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면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꾸는 정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본다. 황사가 걷힌 하늘은 조각구름이다. 무엇을 했고 또 무엇을 하겠다는 것들이 그처럼 흘러간다. 송화가루가 바람에 날린다. 누워 생각해 보니 내가 짓는 정자는 누굴 새로이 맞을 집이 아니라 보내고 잊으려 지은 집, 결국은 버리려고 짓는 집이다. 버릴 때도 됐다. 많이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