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망각

2015-08-19 15:12
다우어 드라이스마 지음 |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펴냄

 



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 ‘은유로 본 기억의 역사’(근간),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등 ‘기억’을 주제로 끊임없이 연구해온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의 심리학사 교수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다우어 드라이스마가 3년 동안 기억을 ‘망각’과 함께 보기 위해 노력한 끝에 내놓은 역작이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기억에 관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바로 망각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을 훈련하는 방법은 있는데 왜 망각을 훈련하는 방법은 없을까? 억압된 기억은 어떤 운명에 처하고 어디에 머무를까? 초상화와 사진은 왜 우리를 기억으로 내모는 특성이 있을까? 우리는 왜 꿈에 관해 아주 나쁜 기억을 갖고 있을까? 절대적 기억이라는 가설이 매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을 비롯해서 뇌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망각’을 포괄적이고 명료하며 재미있게 다룬다. 드라이스마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한다. 다시 말해, 기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메커니즘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냉난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고 먼지 하나 없는 상태의 기억이라는 방에서 회상은 탈색한 종이 위에 고정되어 있고, 찾기 쉽게 색인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50년 혹은 60년이 지나도 새로운 파일이 필요 없을 만큼 튼튼한 파일에 담겨 있다. 이렇듯 자신의 회상이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기억이라는 이상(理想)을 누군들 보호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은유를 통해 기억을 생각한다. 플라톤은 ‘밀랍 판’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밀랍 판은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대체되고, 서적을 통해 기억을 표시했다. 기억을 표현하는 또 다른 은유로는 창고가 있다. 19세기 들어서 신경학자와 심리학자들은 기억을 정보를 저장하는 가장 새로운 기술 개념으로 서술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1839년 이후에는 ‘사진기와 같은 기억’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축음기(1877)와 영화(1895), 마침내 컴퓨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모든 은유에는 공통적으로 ‘보존하다’, ‘저장하다’, ‘기록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기억에 관한 은유의 핵심에는 기록보관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은유는 기억이란 뭔가를 보관할 수 있다는 상상을 전달해준다. 기억이란 망각의 지배를 받는다. 388쪽 | 1만57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