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탄핵 인용도 기각도 설득력이 문제

2025-01-0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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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사진연합뉴스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사진=연합뉴스]
 

지금 한국을 통치하는 기관은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 운명을 비롯해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많은 일들의 향방이 헌재 결정에 달려 있다. 헌재가 지금처럼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떠맡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헌재 결정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탄핵 찬성파도, 반대파도 승복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느냐가 핵심이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다양한 사건들을 심리하거나 심리를 앞두고  있다. 지난 3일 기준으로 탄핵 심판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 사건을 비롯해 무려 10건이나 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지호 경찰청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 조상원·최재훈 검사 사건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까지 탄핵 심판대에 오른 것은 전례가 없다.


정치 무능을 헌재가 떠안아
 

탄핵 심판뿐이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 대행 국무총리의 탄핵 소추 정족수가 일반 공무원대로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인지 대통령처럼 3분의 2인지, 한덕수 대행이나 최상목 대행의 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재 재판관 임명을 보류한 것이 위헌 또는 국회 권한 침해인지도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 이 역시 전례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미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 탄핵 소추 정족수나 헌재 재판관 임명 보류 같은 사건은 이번에 처음 접하는 것들이다. 과거에 없던 사건들이 헌재 심판대에 올라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우리 정치가 유례없는 분쟁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고 헌재가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증거이다.  

 

헌법재판소가 정치 갈등의 중심에 선 지금의 현실은 결코 정상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정치 스스로 풀지 못하고 사법부에 떠넘겨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의 사법화’이다. 정치의 본령은 대화를 통한 협상과 타협이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실패하고 실종됐다는 징표이다.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법에 의한 갈등 해결은 ‘전부 아니면 전무’식이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눈다. 패자와 승자의 상생은 없다. 형사 재판에서 결론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다. 탄핵 심판에서도 탄핵 인용 아니면 기각이다. 그 중간은 있을 수 없다.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정치에 의한 해결은 ‘서로 주고 받기’식이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도 양보한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패자 마음속에 앙금이 남을 일도 거의 없다. 법에 의한 해결보다 진정한 화합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에서 생긴 문제를 사법부에 떠넘기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진화의 한 모습이다.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현실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민주당 "내란죄 철회" 조기 대선 의식?
 

다만 헌재가 정치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선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측면도 있다. 그만큼 법치주의가 성숙해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법치주의는 정치 갈등과 분쟁을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방식이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 공산당 독재국가는 물론이고 과거 우리의 유신체제나 전두환 독재 체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기무사 같은 정보기관에서 정치인들을 그냥 잡아가 협박하고 고문까지 했다. 무법천지였다. 지금은 이런 방식이 통할 수 없다. 법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됐다. 헌재의 탄핵 심판은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의 주요 선진국들이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놀라면서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평화적으로 수습하는 방식에 또 한번 놀라고 있다.    

 

문제는 법치주의에 의한 갈등 해결이 패자의 마음속 앙금을 풀 만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냐이다. 정당성은 절차와 내용 모두에서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관심사로 떠오른 문제가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대상에서 내란죄 부분을 빼는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국회 측은 지난 3일 탄핵 심판 대상에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했다. 당초 민주당 주도로 작성한 탄핵 소추안에는 탄핵 사유로  ‘내란죄’가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이를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행위가 헌법에 위반하는지만 따지고 내란죄에 해당하는지는 따지지 않겠다는 취지이다. 

 

민주당은 내란 혐의의 핵심이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인 만큼 실질적인 탄핵 사유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내란죄가 2대 탄핵 사유였는데 이제 와서 내란죄를 뺀다면 당초 국회의 탄핵 소추 결의가 무효가 된다며 국회 탄핵 결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탄핵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 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국민을 기망하는 처사”라고 했다.

 

국회측 대리인은 내란죄 주장 철회 이유를 ‘탄핵 심판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국정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주장이 옳다. 내란죄 여부를 따지려면 많은 증인을 헌재 법정으로 불러 심문해야 해 심판 기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탄핵 심판 종료 시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시점과 맞물려 나라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 대표 선고가 나오기 전에 탄핵 심판을 끝내고 조기에 대선을 치르는 게 유리하다. 그래서 탄핵 심판을 되도록 빨리 끝내려고 내란죄 주장을 철회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내란죄 주장 철회는 법 논리로나 현실적인 정치적 이해관계로나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법에 탄핵 사유 철회에 대한 명문의 규정은 없고, 이 부분은 재판부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내란죄 주장을 탄핵 사유에서 철회해도 되는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는 말이다. 헌재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중 어느 쪽 주장을 받아들이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를 많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재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된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그 결과 역시 패자 쪽에서는 승복하기 어려워진다. 마음속에 앙금을 품게 된다. 

패자 마음에 앙금 남으면 화합 요원
 

탄핵 심판 과정에서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 선포의 불가피성과 정당성을 주장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헌재 법정에 출석해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KBS, MBC,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은 대략 26%, 찬성하는 여론은 70% 수준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탄핵 소추 남발 같은 국정 방해의 방지가 계엄 선포보다 더 큰 문제라고 여긴다.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게 이들의 정서이다. 

 

물론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어떤 수단이든 용인될 수는 없다. 헌재는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정 방해 사태의 해결이라는 계엄 선포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는지, 인정된다면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적절한지를 따지게 된다.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및 적절성 여부에 대한 헌재 결정 이유를 탄핵 찬성파이든 반대파이든 마음으로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목적이 부당하다면 왜 부당한지, 목적은 정당하지만 계엄 선포라는 수단이 부적절하다면 왜 부적절한지, 나아가 목적도 부당하고 수단도 부적절하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반대하는 ‘26%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목적이 정당하고 수단도 적절해서 탄핵 대상이 안 된다면 왜 그런지를 탄핵에 찬성하는  ‘70%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토머스 홉스 (Thomas Hobbes, 1588년 ~ 1679년)는 ‘법은 입이 없다.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할 뿐이다’라고 했다. 법에는 허점도 있고, 구멍도 있고,  불명확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항상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 허점과 구멍과 불명확성을 채워 넣고 명확하게 하는 건 그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해석과 적용에 따라 법의 의미가 달라진다. 즉 ‘무엇이 법인지’가 결정된다. 이게  홉스의 말에 담긴 뜻이다. 법 규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헌재 재판관은 헌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탄핵 심판을 통해 ‘무엇이 법인지’를 선언하게 된다. 그 선언을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이든 찬성하는 국민이든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화합과 통합을 이룰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패자의 마음속에 앙금이 남는다. 법치주의는 효용성을 잃고 갈등과 대립은 지속된다. 탄핵 심판에 임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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