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이 불발되며 '탄핵 정국' 장기화를 우려한 개인들이 한국 증시에 등을 돌렸다. 양대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하루 만에 1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증권가에선 증시 회복을 위해 정치 불확실성보다 통화 정책과 경기 개선이 중요하다고 진단하고 있지만, 본격 전환 국면은 내년 1분기 말에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개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 8896억원, 코스닥에서 3020억원 등 1조191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를 국면 전환기로 전망하고 "과거 사례를 보면 금융시장은 탄핵 소추안 가결 시 단기적으로 불확실성 해소로 반응했으며 이후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연동됐다"면서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여전히 안정적이기 때문에 신용등급 하향이나 자산시장의 추가 급변동 가능성은 낮지만, (이번 탄핵 소추안 부결로 인해)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연장될 것"이라고 봤다.
한정된 투자금을 운용하는 개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한번 빠져나간 뒤 되돌아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이미 올해 들어 열풍이 불었던 미국 주식투자와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 방향과 맞물려 시세가 급등한 암호화폐 투자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1097억3281만 달러로 연초 대비 66% 증가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대 중반을 오가면서 미국 주식 투자 시 환차손 위험 부담이 커진 상황임에도 보관금액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가 증권사 계좌에 넣어 둔 투자 대기자금인 투자자 예탁금과 주가 상승을 기대한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자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금액인 신용거래융자 잔고 규모가 급감했다.
지난 12월 6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51조7408억원으로 올해 첫 거래일 대비 7조7541억원(13.03%) 감소했고,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16조2046억원으로 연초 대비 1조3325억원(7.60%) 줄었다.
정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단기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투자금이 묶인 채 버티기보다는 '손절' 후 대안 투자처를 찾아 떠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관·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은 한국 증시에서 일시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이는 영구적인 자금 이탈이 아니다. 증시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성장에 주요 변수로 꼽히는 수출과 기업 이익 회복에 따라 이들의 투자가 재개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투자 경기 상황과 기업 실적 전망 등 펀더멘털을 고려해 투자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3거래일간 코스피·코스닥에서 1조원 넘게 순매도했지만, 9일 하루는 양대 시장에서 3000억원가량을 다시 사들였다.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전개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선포·해제 사태와 탄핵 정국이 언젠가 종료될 것으로 판단하고 저가 매수에 들어간 모습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도 기업이익 하향과 환율 상승, 금리 하락 등에 더해진 정치 불확실성으로 증시 약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 불확실성보다는 경제 펀더멘털에서 회복 신호를 찾아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정치 불안의 돌파구는 통화 확장 정책과 수출 경기 개선"이라며 미국과 중국 등의 경제 지표에서 관련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국내 수출증가율과 연관성이 높은 11월 미국 ISM 제조업지수가 상승 반전했고 수출물량증가율과 연관성 높은 중국 주택거래량도 2023년 5월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권으로 진입했으며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과 연결되는 미국 제조업 자본지출(CAPEX) 지수도 재차 상승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2011년 이후 코스피는 평균적으로 12월초 외국인 선물 매수와 기관 프로그램 매수가 유입되기 시작하는 수급 계절성, 연말로 갈수록 유입이 강화돼 이듬해 연초 외국인의 차익매물이 출회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며 "코스피 단기 등락 변수는 국내 정치적 리스크 해소 여부지만, 정치적 변수가 증시 추세를 결정짓는 경우는 없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