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을 두 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벌써부터 관세 전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펜타닐 등 각종 불법 약물과 범죄가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요 교역국인 중국과 캐나다 및 멕시코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관세는 트럼프 경제 정책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일찌감치 이를 공언해 온 만큼 관세 부과는 예정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경제 문제가 꼽힌다. 미국 경제가 3%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 지표는 대체로 양호하게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 고물가로 신음해 온 미국 유권자들이 현 바이든 정부에 대한 심판론으로 트럼프를 택했다는 것.
실제로 트럼프는 유세 과정부터 현재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며 바이든 정부를 세차게 몰아붙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집권하게 되면 고관세와 감세, 불법 이민자 추방 및 제조업 부흥 정책 등을 통해 미국인들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6월 16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트럼프 경제 공약의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 정책에 있어 트럼프보다는 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공약이 한층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권자들은 결국 트럼프를 택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어온 그들이지만 오히려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이 커진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결국 트럼프와 해리스의 메시징(메시지 전달)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트럼프는 물가와 이민 등 실생활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간 반면 해리스는 자신의 경제 공약이 한층 안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수호, 낙태권 보장 등 다소 추상적인 문제를 우선순위로 내세운 것이 유권자들에게는 다소 공허하게 들렸다는 것.
세계적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남긴 "사람들은 꼭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비록 경제 정책에 모순점이 있더라도 자신들이 가려워하는 경제 문제를 긁어준 트럼프에게 유권자들이 반응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정책 실행에 앞서 국민들의 아픈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공감하는 것이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주요 덕목 중 하나이다. 고물가 등 경제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국내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우리는 경제성장률마저 미국보다 못해 더욱 힘든 상황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소식이 전해지고 있고 대기업들마저 트럼프 2기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같은 경제난 속에서 윤석열 정부가 연일 외치는 이른바 4대(의료·연금·노동·교육) 개혁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개혁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그에 앞서 경제 악화로 신음하는 국민들에게 귀를 열고 반응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개혁도 일단 국민이 살아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