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법에 매달려 이치를 무시하다 민심의 쓴맛을 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힘만 믿고 법을 우롱하다 법의 무서움을 맛봤다.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문제로 지탄을 받고,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게 그렇다. 법에만 매달리는 것도, 법을 무시하는 것도 한국 정치가 직면한 문제임을 최근의 사태가 보여준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부정적 평가 요인으로 빠지지 않는 게 김 여사 문제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여사 문제는 최근까지 5주 연속 부정 평가 최상위를 차지했다. 지난 12~14일 실시한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직무수행의 부정 평가 이유로 ‘김건희 여사 문제’(16%)가 1위로 꼽혔다. ‘경제/민생/물가’(13%), ‘소통 미흡’(7%)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이상 6%)을 훨씬 앞섰다.
민심보다 법을 앞세우는 윤 대통령 대응방식의 대표적 사례가 검찰의 김건희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이다. 검찰은 김 여사의 도치이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지 않고 경호처가 제공한 외부 장소에서 조사했다. 검찰의 김 여사 무혐의 판단 못지않게 방문 조사도 큰 논란거리가 됐다.
김 여사 방문 조사 특혜 논란에 '특혜 아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 “저도 검사 시절에 전직 대통령 부인, 영부인에 대해 멀리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한 일이 있다”고 했다. “(검찰) 조사 방식은 정해진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하는 거면 (검찰청사에서 조사를) 하겠지만, 모든 조사는 원칙적으로 임의조사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조사 방식, 장소를 정할 수 있다”고 했다. 방문 조사가 특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법적으로야 윤 대통령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말이다. 많은 국민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일수록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에게는 더 말할 게 없다. 검찰이 스스로 김 여사를 검찰청사로 소환하는 결정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검찰청사로 소환해 조사하라고 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 부인이라도, 아니 대통령 부인이기에 더욱더 일반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이게 할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래서 김 여사가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서고 기자들 질문을 받고 나아가 ‘물의를 일으켜 국민께 죄송하다’고 했더라면 김 여사를 향한 민심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두고두고 국정의 발목을 잡히게 되지는 않았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른바 ‘명품 백’ 사건에서도 민심을 놓쳤다. 윤 대통령은 법률 전문가이니 내심 김 여사가 무죄라고 판단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다르다. 다수 국민들은 대통령 부인이 덥석 선물을 받는 것은 법적 유·무죄를 떠나 잘못이라고 여긴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처신이 일반인과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민심이다.
'명품 백'사건, 진작 딱부러지게 사과했어야
만약 윤 대통령이 사건 초기에 스스로 나서서 ‘대통령 부인으로서 선물을 받은 것은 그 경위야 어떻든 명백히 잘못한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딱 부러지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 사건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즉각 사과하지 않은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윤 대통령 내심의 법적 판단도 결코 작지 않은 요인이 됐을 것이다. ‘법적으로 무죄인데 뭐가 그리 큰 문제냐’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로 언론 보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여사 문제에서 벗어나려면 윤 대통령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을 때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이다. “(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중대한 실책이 없는데도 여론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국면 전환 인사나 조치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안다.” 법적 판단을 민심에 따른 판단보다 우선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이 대표와 민주당이 무죄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법정에서만 할 수 있다. 법정 밖에서, 그것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 서명을 통해 주장하고, 게다가 탄핵까지 운운하면 법원에 대한 겁박이 될 수밖에 없다. 무죄를 선고하라고 판사를 협박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행위는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간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 대표 무죄' 시위, 재판의 근본 훼손
민주법치국가에서 재판의 근본은 ‘자유심증주의’이다. 어떤 증거를 유죄 증거로 볼지, 무죄 증거로 볼지는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긴다는 말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법관도 신이 아닌 이상 유·무죄 판단을 잘못할 수 있다.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오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자유 판단’에 맡기는 이유는 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법관이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압력을 받지 않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게 여러가지 재판 제도 중 가장 낫다는 인류의 오랜 경험과 전통에 의한 것이다. 그 대신 3심 제도나 재심 제도 등 오판을 최대한 막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
법원이 이 대표에게 공직선거법 위반죄를 인정해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자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원이 검찰의 억지 주장만 받아들여 유죄 판결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 측은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을 반박하며 무죄라는 주장을 수없이 폈다. 판사는 양측 주장을 다 듣고 나서 이 대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어느 쪽 증거가 더 타당한지는 판사의 자유 판단에 따른다는 자유심증주의에 의한 판결이다.
이 대표가 자유심증주의를 존중한다면 앞으로 2심에서 자기한테 유리한 새로운 증거를 내세워 판사가 무죄 심증을 갖도록 하면 된다. 그게 법 절차를 지키는 길이다. 그러지 않고 법원을 향해 무죄 압박 시위를 하는 것은 자유심증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훼손하는 일이다. 판사에게 양심껏 하지 말고 민주당 힘을 보고 재판하라는 말이다. 검은 것을 희다고 하라는 말이다. 이 어찌 재판의 근본을 해치는 일이 아닌가.
민주당은 이 대표 수사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국회에서 청문회를 여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를 보복하려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사가 정말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면 탄핵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를 수사하고 기소했다는 이유로 탄핵 운운하는 것은 힘을 앞세워 법을 우롱하는 또 하나의 법치 무시일 뿐이다.
명백한 위법 없는데도 수사 검사 탄핵 추진
민주당은 검찰이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자 수사를 지휘한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탄핵 소추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다 취임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이 사건을 지휘할 수 없었던 검찰총장까지 탄핵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여론의 반박에 밀린 듯 검찰총장은 탄핵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 등 간부 3명 탄핵은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검사가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할 때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합법적 권한 행사이다. 그 판단이 반드시 옳은 판단이었느냐 하는 논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합법적 권한 행사인 이상 법 위반은 아니다. 따라서 탄핵 대상도 될 수 없다. 탄핵 추진은 법 무시 행위일 뿐이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대놓고 법원을 겁박하고 법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국회 다수당이라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임을 모를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무죄를 ‘확신’하고 ‘촉구’해도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법의 엄정함을 피해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1심 유죄 판결을 ’사법 살인’ ‘정치 재판’이라고 주장한다.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행위가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는 이치를 못 이기고, 법은 권세를 못 이기고, 권세는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법을 앞세워 민심을 거스르는 윤 대통령은 억지가 이치를 못 이긴다는 말을, 힘을 앞세워 법을 무시하는 이 대표는 권세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ㆍ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