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그룹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준한은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대중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은 바 있다.
'밴드 붐'이 왔다면서도 이들에게 대중성을 강조하고 '아이돌 밴드'의 길을 걸으라고 종용하는 이들에 대한 일침 같기도 했다. 조언을 가장한 편견 속에서도 이들은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고난과 갈등 속에서도 이들은 가장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다운 결실을 맺었다. 단독 콘서트 '리브 앤드 폴(LIVE and FALL)'은 이들의 궤적의 방증인 셈이다.
17일 오후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단독 콘서트 '리브 앤 폴'(LIVE and FALL)이 개최됐다. 지난 2022년 개최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스테이지 플랫: 오버쳐(Xdinary Heroes Stage ♭ : Overture)' 이후 2년 만에 올림픽홀에 입성해 전 회차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오프닝 라인업은 드럼, 기타, 베이스, 키보드로 정교하게 화음을 쌓고 예리한 고음으로 벽을 깨트리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업이었다. 이들은 오프닝 라인업을 통해 단숨에 관객을 압도했고 팀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이어진 '브레이크 더 브레이크'(Break the Brake), '노 매터'(No Matter), '머니 온 마이 마인드'(Money On My Mind)도 마찬가지. 이들은 보다 넓어진 무대에서도 위축되는 법 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프닝 무대 후 오드는 "드디어 더 큰 공연장에서 더 많은 빌런즈(팬덤명)과 함께하게 돼 기쁘다"고 인사했고, 정수는 "정말 감사하다. 어떻게 빌런즈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늘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만들어주자'고 생각했다. 특별한 종합선물세트가 준비되었으니 기대해달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다음 섹션도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기세를 느낄 수 있는 곡들로 구성됐다. '잠꼬대' '서커 펀치!(Sucker Punch!)' '프리킹 배드(Freakin' Bad)'로 위트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필링 나이스'(FEELING NICE), '페인트 잇'(Paint It), '스트로베리 케이크'(Strawberry Cake), '소년만화' 러브 앤드 피어(LOVE and FEAR)'로 한층 더 성장한 밴드 사운드를 표현해냈다. '헤어 컷'(Hair cut), '해피 데스 데이'(Happy Death Day), '맨 인 더 박스'(Man in the Box)를 통해 보여준 데뷔 초 실험적인 사운드를 상기하는 시간도 의미 깊었다. 이 과정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건 팬들과의 '호흡'이었다. 건일은 '맨 인 더 박스'에서 1분이 넘는 시간 동안 드럼 솔로를 이어가며 팬들의 감탄을 자아낸바. 여느 무대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을 안기는 시간이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팬들의 부름에 응답하고, 팬들의 호응을 이끌기도 했다. 짜인 판에서 움직이는 말이 아니라 직접 판을 이끌고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한국 록밴드의 전설, YB 윤도현도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응원하기 위해 직접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인스테드'(iNSTEAD!)를 통해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와 인연을 맺은 윤도현은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기로 결정했다고. 그는 그로울링 창법을 통해 진짜 '메탈'의 맛을 선보이기도 했다.
윤도현은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벌써 이렇게 성장을 했다. 무대를 보는데 '아빠 미소'가 떠나질 않더라. 정말 멋지다. '인스테드' 피처링의 인연이 여기까지 닿았다. 빅 스포를 전하자면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YB의 새 앨범에 참여하게 됐다. 이미 녹음을 마친 상태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와 함께 할 의도를 가지고 곡을 새로 썼다. 에너지를 써야 하는 곡인데 아이들이 한을 풀고 갔다"고 말해 뜨거운 환호를 얻었다.
공연 후반부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표 발라드로 구성됐다. '워킹 투 더 문'(Walking to the Moon), '플루토'(PLUTO),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언틸 디 엔드 오브 타임'(until the end of time), '패러노이드'(Paranoid), '나이트 비포 디 엔드'(Night before the end)까지 감성적 무드와 가사가 인상 깊은 곡들을 선보였다.
무대 연출도 매력적이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록 사운드를 강조한 섹션은 무대 중앙의 '나무'를, 발라드 섹션은 조명으로 '우주'를 구현했다. 조명, LED를 통해 나무 그늘, 반딧불이를 묘사하며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성장을 '나무'로 표현하였고, 별의 움직임과 구성으로 이들의 '유니버스'를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워킹 투 더 문' '플루토'로 이어지는 곡에서 '별'의 움직임을 조명으로 표현한 무대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앙코르 무대는 팬들뿐만 아니라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눈물샘도 터트렸다. 직접 겪은 감정을 곡으로 쓰는 멤버들답게 노래 하나하나에 감정 이입하고 실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전달했다.
총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빌런즈와 호흡을 맞춘 이들은 팬들의 성원에 즉석에서 몇 곡이나 앵콜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주연은 몸 상태가 안 좋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어제 공연에서 (팬들에게) '나에게 기적을 내려달라'고 했었다. 오늘 역시 그 기적을 받았다. 목의 데미지는 쌓였지만, 컨디션은 좋았다. '무대를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는 에너지를 통해 목소리가 나오는 기적을 맛보았다. 좀처럼 끊기 쉽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가온은 "'꿈꾸는 소녀' 중 '엄마, 진짜 잘 해내고 싶은데 되는 게 하나도 없네요'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눈물을 쏟는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제 심정과도 같아서였다. 지난해에 우리가 일이 참 없었다. 휴식기가 길어지며 조급했고 이 노래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심정이었다. 제가 음악을 늦게 시작했고 그만큼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오늘 이 노래를 부르며 울지 않았다. 오늘 공연에 어머니께서 와계시는데 (노래 가사처럼) 느껴지지 않더라. 내가 이룬 게 있는 것 같다. 여러분 덕이다. 여기 계신 분들은 곽지석이라는 인간의 업적을 남겨준 거다. 그래서 (꿈꾸는 소녀를 부를 때) 후련했다"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건일은 "첫 콘서트를 올림픽홀에서 했다. 20살 때부터 꿈꿔왔던 무대였기 때문에 마냥 꽉 차 있다고 여겼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최근 (첫 콘서트) 사진을 보니 텅 비어 있더라. 2층 객석은 차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 오프닝 무대를 하며 객석을 보니 가득 차 있더라. 울컥했다. 감동적이더라. 우리가 여기까지 오고, 연주할 수 있는 건 모두 팬들 덕"이라고 인사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올 한 해 디지털 싱글 시리즈 '오픈 베타(Open ♭eta)', 콘서트 시리즈 '클로즈드 베타(Closed ♭eta)'로 구성된 '2024 엑스페리먼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장해 왔다. 발라드부터 얼터너티브 메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자랑했고 총 15회에 달하는 단독 콘서트로 내공을 쌓았다. 이들의 '세계'가 넓어지는 시간을 함께한 순간이었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우주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대중성'과 '고유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들은 이들의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기를 바란다. 여느 때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여느 때처럼 무대 위에서 날뛰기를. 이번 '리브 앤드 폴'을 통해 다시 한번 응원을 전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