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인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50대 남성은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의 도움까지 받았던 거리 노숙인이었다. 그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보호 시설로 연계됐지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시 술을 입에 댔다가 퇴소 처리된 상태였다. 다시 길로 돌아온 그는 삼삼오오 노숙인들과 술을 마시다 변을 당했다.
치료를 위해 병원, 재활, 자활 등 시설로 연계되거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해 주거지원 등을 받았던 노숙인들이 또다시 거리를 집으로 삼는 ‘회전문’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이나 지역사회로 연계된 노숙인들의 촘촘한 관리는 물론, 만성 노숙인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전문 인력 등 인프라 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엄씨는 지난 여름 영등포 한 아파트 인근에서 거리 노숙을 하다 폭염에 실신한 채 발견돼 병원에 응급 입원이 됐다. 한 달여 간의 입원생활 후 엄씨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한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직원은 “엄씨가 실신을 해서 병원에 갈 수 있었던 거지 정신이 있었다면 입원을 거부해 치료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센터 직원들이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엄씨에게 말을 걸면 호통을 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탈 노숙’을 거부하는 이들이 거리에서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특히 수치상 거리 노숙인 수는 감소했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작 만성 노숙인 수는 줄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21년 서울연구원도 ‘서울시 노숙인 정책 진단과 발전방안’ 연구보고서를 통해 노숙의 문제는 노숙인 수와 구성 비율보다 노숙이 장기화하고 노숙을 경험하는 사람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문제는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만성 노숙인의 경우 치료나 주거 지원을 거부하고 노숙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 복귀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영등포 쪽방촌 근처에서 만난 류모씨도 그 사례 중 하나다. 거리 노숙을 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류씨와 센터 직원들이 허물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기까지 2년이 걸렸다. 류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꾸준한 약물 복용 등 치료가 필요하지만, 이날도 보호 시설 연계 등 서비스받기를 거부했다.
이들을 위해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정신건강팀은 아웃리치를 진행한다. 아웃리치는 찾아가는 거리 복지상담으로 노숙인을 발굴하고 노숙인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노숙인과의 신뢰,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아웃리치의 핵심이다. 정신건강팀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거리에 나가 노숙인을 찾아 그들과 친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정신건강 전문요원이 담당해야 하는 노숙인 수 자체가 많은 실정이다. 서울 내 위치한 종합지원센터 3곳에는 10여 명의 정신건강 전문요원들이 근무한다. 한 종합지원센터의 경우 전문요원 1명이 담당하는 노숙인 수가 1년에 60~70명에 달할 정도다. 코로나 이후에는 신규로 등록된 노숙인 수도 늘고 있어 인력이 넉넉지 않은 상황이란 게 현장의 목소리다.
노숙인 밀집지 중 하나로 꼽히는 영등포역 인근 종합지원센터에는 정신과 촉탁의와 노숙인 전담 경찰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촉탁의가 그만둔 이후 의료 대란까지 겹쳐지면서 지원자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담경찰은 수년 전 퇴직으로 공백이 생긴 후 충원되지 않으면서 협력 체계 구축이 요원한 상황이다.
노정균 마포구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거리 노숙인은 보호자가 없어 치료 기회를 놓치고 점점 사회에서 더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정신과 진료와 처방이 중요한데, 전문요원들은 진단과 처방·입원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 의사가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한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응급 입원의 권한이 경찰·의사에게 있어 긴급한 상황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경찰, 의료, 행정적인 부분의 유기적 연결 체계가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며 “노숙인은 물론 시민과 전문요원 등을 보호하는 데도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