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연한 태도를 보여 줘야 한다. 그럼에도 ‘2025학년도 정원에 대해 의견은 들을 수 있으나 입장 변화는 없다’는 기존 방침만 고수하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대상 종합 국정감사에서 정부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향해 날린 일침이다.
당시 조 장관은 2025학년도 입학정원 논의에 대한 기존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수많은 물음에 “입장에 변화 없지만, 충분히 의견을 듣겠다”고 일관되게 답했다. 이미 입시가 시작돼 의대 지망생은 물론 수험생에게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개월간 이어진 의료대란의 첫 시발점은 2025학년도 의대정원 증원 2000명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2000명 증원을 고집하고, 의료계는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기준을 서로가 꺾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간 입장 차이만 도드라질 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선진국 자부심을 안고 살던 많은 이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탄식을 내뱉는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사람이 죽어 나간다는 소식이 온 나라를 뒤덮는 사태를 목도하면서다.
의정갈등의 피해는 병원 재정적자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의 적자가 올 상반기에만 400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 손실액 1612억원의 2.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적자가 가장 큰 국립대병원은 서울대병원으로 1627억원에 달했다. 이어 경북대 612억원, 전남대 359억원, 부산대 330억원, 충북대 263억원, 경상국립대 210억원 순이다.
이들 병원은 경영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자본잠식상태에 빠진 강원대병원은 정부 명령에 따른 전공의 사직 처리 지연으로 손해배상 소송 등 분쟁에 휩쓸려 행·재정적 부담이 크다며 이중고를 호소했다. 부산대병원은 응급실 인력 부족으로 교대 시간을 연장해 운영하고 있으나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는 상태다.
지자체가 병원에 보너스까지 지급하며 전문의들을 달래도 의료공백은 여전하다. 실제로 서울시와 경기도가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246억6000만원을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지급했지만, 전공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신규 채용은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2025학년도 정원 증원에 대해 ‘입시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고집한다면 의료대란 사태는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애초에 의료계가 어쩔 수 없는 상황(입시 시작)까지 몰고 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휴학한 전공의들은 정작 의정갈등 매듭이 그리 급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전공의들의 똑똑함은 이미 학벌과 전공으로 증명된 만큼 학원, 과외, 해외 등 수요는 많기 때문이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할수록 피해는 환자와 가족들, 국립대 병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과 다른 정부의 변화한 태도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