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3년 치를 제출하라고 해서 하나하나 다 다운받아 인쇄까지 한 종이 자료가 수백 장은 족히 넘을 거예요. 보도자료만 보내는 게 아니고 보도자료에서 봐야 할 것, 주요 내용도 정리해서 보냅니다. 이 자료를 의원들이 다 볼지 의문이에요.”
오는 11월 행정감사를 앞두고 한 서울시 공무원은 서울시의회 의원실에서 ‘3년 치 보도자료 일체’라는 간단한 내용의 자료 제출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서울시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확인할 수 있는 보도자료를 일일이 종이로 출력해 제출하라는 의미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감시하고 행정을 견제하는 건 시의회 본연의 역할이다. 그중 행정감사는 정책과 행정이 정확히 이뤄졌는지, 예산이 적절하게 쓰였는지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 중요한 자리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치단체에 자료를 요청하는 건 투명하고 철저한 감사를 벌이라고 주어진 의원 고유의 권한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고유 권한이 의미 있게 쓰이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매년 행정감사 기간이 돌아오면 자료 제출로 인해 지방의회 의원들과 지방 공무원들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여러 지방공무원 노조는 그간 3~5년 치 자료는 기본이고, 부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무리한 자료 요구로 업무 마비를 겪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 자료의 목적과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어 방대하거나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의원들은 정당한 직무수행이라며 팽팽하게 맞선다.
그런데 과연 누구나 시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한 보도자료 3년 치 자료 요구도 정당한 직무수행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든다. 일하는 티를 내려는 일부 의원들의 ‘잔심부름’ 요구에 행정력만 낭비되는 상황이다.
공무원들은 밤새워 자료를 준비해도 실제 행정감사 때 해당 자료를 활용해 질의하는 걸 보지 못하니 허탈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준비한 보도자료 수백·수천 장은 행정감사가 끝나면 바로 폐기된다. 자료 파쇄를 위해 마대에 모은 뭉치들이 통로를 가득 채운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서울시의회가 지방의회 최초로 전자회의 단말기를 도입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종이 문서를 없애 자원 절약을 할 뿐만 아니라 서류 등을 준비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는 시 집행부의 효율적인 의회 참여를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3000만원가량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단다. 그럼 행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