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헌재 마비'가 초래할 위험, 국회는 몰랐을까

2024-10-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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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지난 14일 헌법재판소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의 효력을 정지하였다. 7인 이상의 헌법재판관이 출석해야 사건에 대한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6인 이상의 재판관으로도 심리가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는 17일 임기가 만료되는 헌법재판관 3인에 대한 후임자 선출을 국회가 지체함으로 인하여 헌법재판소가 기능 마비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자신의 심리 방법을 변경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3인의 재판관 선출을 지체함으로써 기능이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삼권분립에 충실한 것일까? 그 경우에는 국회에 의한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로 인해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권 등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국회에 대한 통제를 무력화하는 것인데, 그로 인한 삼권분립 위배가 더 심각하지 않은가?

더욱이 헌법재판소의 기능이 마비될 경우에 발생할 가장 큰 문제점은 위헌법률심판이나 탄핵심판을 할 수 없다는 점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헌법소송인 헌법소원심판이 모두 정지된다는 점이다. 정치권의 분쟁으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이다.

현행법상 인정되는 다섯 가지 헌법소송 중에서 헌법소원심판의 사건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이는 독일 등 헌법소원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에서는 공통된 현상이다. 위헌법률심판이나 권한쟁의심판, 탄핵심판 등과 달리 국민이 직접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헌법소송이 헌법소원심판이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소원심판을 통해 중요한 결정이 내려진 것도 무수히 많다. 특히 국제그룹 해체 사건에 대한 위헌 확인, 유신헌법 당시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결정,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위헌 확인 등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헌법소원심판이 정지되는 것은 그 성질상 권리구제 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이 문을 닫는 것과도 유사하다. 법원이 제 기능을 하는 상황에서도 재판 지연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데, 법원이 아예 기능 마비에 빠져서 재판을 못하는 상황이 되면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국회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 3인의 선출과 관련하여 관행에 따라 여당과 야당이 각 1명씩, 그리고 여야 합의에 의해 다른 1명을 선출하던 것을 변경하여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2명의 재판관을 선출하겠다는 것을 둘러싼 갈등이 재판관 선출 지체의 원인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기능 마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국회를 해산하고 유신헌법을 제정했던 상황에 빗대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정부에 대한 국정통제권을 가진 국회를 해산시켜서 반대와 비판을 봉쇄한 상태로 정부의 독선적인 활동이 행해지는 것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국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통제를 무력화하는 것은 본질상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초래될 것을 알면서도 재판관 선출을 지체한 것은 국회의 중대한 직무유기로 볼 수밖에 없다. 최소한 여당 몫과 야당 몫의 재판관 2인이라도 먼저 선출했다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로 인하여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의도한 것이라는 의혹까지도 제기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소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효력정지를 결정한 것에 대한 비판도 일리가 있지만, 그보다는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라는 사안의 중대성이 훨씬 크다. 즉, 사안의 경중을 따질 때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해서 헌법재판소법 제23조 제1항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은 오히려 정당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사태를 우려하여 독일에서는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에도 후임 재판관이 임명될 때까지 계속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고, 오스트리아는 예비재판관 제도를 두고 있다. 14인의 헌법재판관 외에 6인의 예비재판관을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헌법학계의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오스트리아식 예비재판관 제도는 헌법재판소의 구조 자체에 대한 변경이기 때문에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반면에 독일식 제도는 헌법재판소의 운영 방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법의 개정으로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과거 개헌 논의 과정에서 일부 검토되었지만 구체적인 개헌안으로 나온 적이 없으며, 관련한 헌법재판소법의 개정은 정치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재판관 공석으로 인한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회의 헌법재판관 3인 선출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6인의 헌법재판관이 헌법소송 사건을 심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종적인 결정까지 내릴 것인지의 문제가 다시 대두될 것이다.

9인의 재판관 중에서 6인 이상의 찬성으로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이나 탄핵 결정 등을 내리는 것과 6인의 재판관이 만장일치로만 위헌 결정 등을 내리는 것은 그 의미에서 큰 차이가 있다. 1명의 재판관이 반대해도 위헌 결정 등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은 위헌 결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6인의 재판관이 심리를 마친 상태에서 결정은 내리지 못하여 재판 지연이 무한정 길어지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에는 만장일치가 된 사건에 대해서만 먼저 결정을 내리고, 그렇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는 결정을 늦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아닐뿐더러 그전에 국회에서 헌법재판관 선출을 서둘러서 헌법재판소의 6인 체제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해결일 것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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