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게 신뢰관계인 동석 신청권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16일 아주경제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는 최근 점유물이탈횡령죄,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사건 국민참여재판 공판준비기일에 증거채택 결정을 하면서 "발달장애인에게 발달장애인법에 따른 신뢰관계인 동석 신청권을 고지하지 않으면 적법 절차 위반"이라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발달장애인 A씨는 길에 떨어진 다른 사람 신용카드를 주워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경찰에서 피의자 신문을 받을 당시 경찰관에게서 '피의자는 발달장애인법에서 규정하는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발달장애인'이라는 뜻을 잘 몰랐던 A씨는 '아니오'라고 답했다. 이어 조사 마지막에 '추가적으로 제출할 자료나 의견이 있느냐'는 경찰 질문에 A씨는 '제가 지적장애 3급인데 참고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 사건 국민참여재판 공판준비기일에 신뢰관계인이 동석을 고지하지 않고 이뤄진 피고인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논쟁의 중심에 섰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에게 증거를 보여주기 전 공판준비기일에 피고인과 변호인, 검찰이 참석한 가운데 증거채택 결정을 하게 된다.
A씨 측은 "수사기관이 장애 사실을 알고도 신뢰관계인 동석 신청권을 고지하지 않은 것은 적법 절차 위반"이라며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발달장애인이라도 수사관이 보기에 불필요하다면 신뢰관계인 동석 신청권을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 조서에서 "현행법에 따라 경찰이 피고인이 발달장애인임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신뢰관계인 동석 등을 신청할 수 있다는 권리가 있음을 고지하지 않은 위법이 있다"며 "피의자 신문조서들은 적법 절차에 반해 작성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어 (본 재판에서) 채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를 대리한 손영현 국선전담변호사는 "판결은 아니고 공판준비기일 조서에 기재된 것이긴 하지만 증거능력이 없어 채택하지 않겠다는 것을 번복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건에서 증거에 대한 판결과 같다고 볼 수 있다"며 "2년 전 비슷한 사건에서 같은 주장을 했지만 법원이 '발달장애인이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신뢰관계인 동석 신청권을 고지할 필요가 없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진일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신뢰관계인 동석을 고지하지 않으면 적법 절차에 위반된다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법원이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